연락이 의무가 될 때

관계의 본질을 다시 묻다

'안부'의 이름으로 주고받는 피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연락하는가?


전화 한 통, 문자 메시지 한 줄, 혹은 카카오톡의 짧은 "잘 지내?"라는 인사. 누군가는 그것을 애틋함이라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또 다른 부담이라 느낀다.


관계는 원래 자발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연락을 해야만 하는 사이"에 갇히고 만다.


"왜 연락 안 해?", "요즘 너무 뜸하네?"라는 말은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그 안에는 묘한 압박이 숨어 있다.


상대를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의 부재를 불편해하는 자기감정의 투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주, 연락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의 없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하지만, 성의는 자주함에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진심에서 비롯되는가?


첫째, 의무가 된 연락, 관계의 균열을 드러내다.


처음엔 자주 연락하던 친구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안부를 물었고, 하루 일과를 공유하듯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연락'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누가 먼저 보냈느냐를 따지는 눈치 싸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또 먼저 연락했네"라는 속마음이 생기고, 메시지를 받았을 때 반가움보다는 "또 답장해야 하네"라는 의무감이 앞선다.


이쯤 되면 '연락'은 관계의 따뜻한 징표가 아니라, 관계를 간신히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 된다.


진심으로 안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안 하면 서운해할까 봐" 하는 연락이라면, 그 관계는 이미 균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만든 과잉 연결, 고립된 감정


디지털 기술은 우리를 언제든지 "연결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다. 손 안의 스마트폰만으로 누구와도 즉각 소통할 수 있는 시대. 하지만 그 연결이 깊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더 자주, 더 많이 연락을 하면서도 더 외롭다고 느낀다. 관계가 숫자화되고, 메시지의 빈도가 관계의 질을 대신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표면 위를 떠다닌다.


이제는 연락이 없으면 "관심 없음"으로, 답장이 늦으면 '소홀함'으로 간주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더 피로해진다. 때로는 고요함도 관계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우리는 침묵을 곧 단절로 해석한다.


셋째, 친목도 존중받아야 할 표현이다.


좋은 관계는 자주 연락하는 관계가 아니라, 연락이 없더라도 편안한 관계다. 침묵을 견딜 수 있는 사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건강한 관계다.


연락이 뜸해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다시 연결될 때 어색하지 않은 그런 사이.


물론, 연락이 사라졌다는 건 감정의 거리도 멀어졌음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침묵이 단절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고, 때로는 고요하게 내면에 집중해야 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마저도 인정해 주는 관계야말로 진짜 어른의 우정이고 사랑일 것이다.


넷째, 관계 주도권을 자기 자신에게


누군가와의 연락이 의무처럼 느껴진다면, 그 감정을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는 관계에 대한 중요한 신호가 담겨 있다.


혹시 그 관계가 당신에게 지나치게 일방적이지는 않았는지, 혹은 당신 자신이 피로한 상태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먼저 존중하는 일이다. 억지로 이어지는 관계는 결국 언젠가 무너진다.


반면, 잠시 멈췄다가도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관계는 오래간다. "연락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연락하고 싶어서" 연락하는 관계, 그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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