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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인간의 본능일까

감정의 그림자를 마주 보는 법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감정을 느껴본다. 친구의 승진 소식에 박수를 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무겁고, 연인의 예전 사진 속 누군가를 바라보며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다.


때로는 누군가의 칭찬을 듣고 웃고 있으면서도, "왜 나는 아닌가?"라는 질문이 속에서부터 피어오른다. 그것이 바로 '질투'다.


질투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진다. 사회적으로도 질투는 "유치하다", "소심하다" , "쪼잔하다"는 말과 쉽게 연결된다.


하지만, 과연 질투는 단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감정일 뿐일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질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건드리는 감정이며, 때로는 성장의 동력마저 될 수 있다.


그 세부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진화의 기억 속에 새겨진 감정


진화심리학에서는 질투를 인간 생존 전략의 일부로 본다. 인간이 무리 지어 살아오면서 자원을 얻고, 짝을 선택하며, 경쟁을 통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아닌 타인이 더 선택받는 것"에 대한 경계와 불안은 본능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의 질투는 짝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생물학적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질투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남성은 육체적 배신"에, "여성은 감정적 배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각각 "번식과 양육"에 유리한 전략을 선택해 온 진화적 흔적일 수 있다.


이처럼 질투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남기 위해 진화적으로 채택한 생존 검정의 일종이다.


다시 말해, 질투는 결코 부끄럽거나 비정상적인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다움의 증표이자, 타인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둘째, 질투는 비교해서 온다.


현대 사회에서 질투는 생존보다는 비교와 인정 욕구에서 더 강하게 비롯된다. SNS를 열면 친구의 여행, 지인의 성취, 타인의 연애와 일상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삶과 자신의 현재를 비교하며 자존감의 균열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왜 나는 그렇지 못할까?",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감정이 질투라는 형태로 모습을 나타낸 드러낸다.


특히,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타인의 시선 속에 나를 투영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박탈감은 질투로 변형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투가 반드시 타인을 미워하거나 해치고 싶다는 감정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때로 "나도 더 사랑받고 싶다", "나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셋째, 질투를 감정의 연료로 바꾸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질투를 억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질투는 무작정 부정하거나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그 감정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때, 질투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연료가 될 수 있다.


질투는 어떤 결핍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는 왜 저 사람을 부러워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그 안에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영역, 혹은 아직 마주하지 못한 자기 상이 숨어 있다.


따라서 질투를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삼아야 한다.


넷째, 질투 없는 삶은 없다.


질투는 감정의 어두운 골목길이지만, 그 끝이 반드시 어둡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질투를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질투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질투에 휘둘리는 삶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질투를 어떻게 다루느냐, 어떻게 성숙하게 품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무너지는 대신, 질투를 자각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더욱 단단한 내면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따리서 질투는 인간의 본능일지언정, 그것을 이겨내는 성장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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