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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탯줄, 언제 끊어야 할까

부모와 자녀 사이, 독립이라는 진짜 성장의 순간

어른이 된 자녀가 여전히 부모 곁을 맴돈다. 단순한 주거 의존을 넘어, 삶의 결정과 감정의 균형마저 부모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른바 "리터루족(Returner+Kangaroo)" 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는 독립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다.


사회경제적 여건이 이들을 되돌려 보낸 측면도 크지만, 더 깊은 원인을 찾자면 "심리적 탯줄"이라는 보이지 않은 끈이 존재한다.


탯줄은 생명을 잇는 통로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반드시 잘라야만 하는 것이다. 육체의 탯줄은 출생과 함께 끊어지지만, 심리적 탯줄은 언제, 어떻게 끊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시점이 없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자녀는 부모를 의지하면서도 스스로 설 수 없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며 자립의 기회를 무심코 가로막는다.


그렇게 서로의 "안전지대" 안에서, 독립이라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심리적 탯줄을 끊는다는 것은 관계를 단절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감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율적인 존재로 서는 과정에서 "자녀가 부모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야 진정한 독립이 시작된다. 부모 역시 돌아보아야 한다. 자녀의 독립은 단지 자녀의 몫이 아니다.


자녀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의 불안, 통제와 과잉보호의 방식,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무언의 신념이 자녀의 심리적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 탯줄을 붙잡고 있는 손이 사실은 부모 쪽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20살이 넘었다면, 부모는 이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지켜보는 존재"로 변해야 한다. 조언은 해도 간섭하지 말아야 하고,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자녀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세상은 점점 더 냉혹해지고, 경제적 독립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리적 독립은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패를 감내하며,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연습은 그 어떤 경제적 여유보다 소중한 자산이 된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부모는 왜 자녀를 놓지 못할까?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녀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어느 순간 과잉 통제로 바뀌고, 자녀의 자율성을 빼앗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엄마가 너보다 더 잘 안단다."

"아빠가 살아봐서 그래."

이런 말들은 자녀에 대한 조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결정권을 부모가 가져가려는 태도다.


심리학자 보울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간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분리 불안을 지나치게 불안하게 받아들이거나, 자녀에게 애정을 인질 삼듯 주었다 뺐는 양육을 했을 경우,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설 수 없는" 상태로 머무르게 된다.


둘째, 자녀는 왜 독립하지 못할까?


심리적 독립이 어렵다는 것은 단지 부모 탓만이 아니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불안정한 고용, 고비용의 주거, 높은 경쟁 사회 속에서 물리적 독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서적 자율성의 부족이다. "실패하면 부모가 도와줄 거야."

"중요한 선택은 부모의 의견을 따라야 안심돼."


이런 내면의 대사가 반복된다면, 자녀는 어른의 몸을 가졌어도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다.


여기에는 부모의 양육 태도뿐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 실패를 겪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현실도 영향을 미친다. "스펙 쌓기"에는 능숙하지만, "삶의 무게"에는 서툰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셋째, 심리적 탯줄을 끊는다는 것의 의미


심리적 탯줄을 끊는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끈을 놓음으로써 더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자녀는 더 이상 부모의 인정 없이도 자신을 존중하며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도 해보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을 키워야 한다.


부모는 "이제 너의 인상은 너의 것"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조언은 하되, 결정은 자녀에게 넘기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게 해야 한다.


심리적 탯줄이 끊기는 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선 반드시 그 순간이 와야 한다. 너무 늦는다면, 자녀는 부모의 삶에 갇히고, 부모는 자녀의 삶에 갇힌다. 결국 각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두 사람의 고리가 된다.


넷째, 건강한 분리를 위한 제안


1. 경제적 독립을 목표로 한 "단계적 자율 훈련"


경제적 자립은 심리적 자립의 중요한 조건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와 자녀 간에도, "생활비 분담"이나 "재정 상담"을 통해 책임감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2. 부모와 자녀가 "감정 거리"를 확보하는 대화법 실천


자녀가 무언가를 의논했을 때, 바로 해결책을 주기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겠니?"라고 되묻는 태도가 중요하다.


3. 관계의 전환을 인정하는 의식


성년이 된 자녀에게 "이제 너는 내 딸(아들)이기 이전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고 말해주는 순간은 부모 자신에게도 큰 전환점이 된다.


다섯째, 부모의 사랑, 때론 물러섬이 더 큰 힘이다.


사랑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진짜 사랑은 어느 순간 물러서 주는 것이다.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용기, 자녀가 실패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여유, 그 안에서 자녀는 성장한다.


세상에 나올 땐, 생물학적 탯줄을 자르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은, 심리적 탯줄을 자를 때다.


부모도 자녀도 그 끈을 놓을 준비를 할 때, 비로소 서로의 인생이 시작된다. 탯줄은 생명을 주는 도구였지만, 자립의 순간에 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는 묻자. "심리적 탯줄, 정말 아직도 필요한가?" 자녀가 성인이 되었다면, 부모도 이제는 마음속의 가위를 들고, 그 끈을 조용히 잘라야 할 때다. 이것은 이별이 아닌, 진정한 성숙을 향한 출발이다.


사랑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진짜 사랑은 어느 순간 물러서 주는 것이다.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용기, 자녀가 실패할 수 있게 내보내 주는 여유, 그 안에서 자녀는 성장한다.


세상에 나올 땐, 생물학적 탯줄을 자르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은, 심리적 탯줄을 자를 때다.


부모도 자녀도 그 끈을 놓을 준비를 할 때, 비로소 서로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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