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어디에 있을까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행복을 묻는 질문은 오래되었지만, 요즘처럼 자주 던져지는 시대도 드물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고, 기술은 편리해졌지만 삶은 더 바빠졌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리는 더 많이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자주 공허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묻는다.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많은 이들이 행복을 조건으로 이해한다. 일정한 소득, 안정된 직업, 무탈한 가정, 사회적 인정,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조건을 충족해도 행복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는 순간의 기쁨은 잠깐이고, 곧 더 높은 기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행복이 자꾸 뒤로 미루어지는 이유다.


문제는 행복을 미래형으로 설정하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의 삶을 '과정'으로 여기고, 행복은 언젠가 도착할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사고방식 속에서 현재는 늘 부족하다. 더 나아져야 하고, 더 견뎌야 하며, 더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희생물이 되고, 삶은 끊임없이 유예된다.


하지만 행복은 그렇게 도착하는 목적지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감정과 상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태에 가깝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누군가는 불만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무사히 지나간 하루로 받아들인다. 차이는 조건이 아니라 인식에 있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기보다, 현재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현재에 머무는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을 곱씹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데 익숙하다.


이 사이에서 현재는 늘 사라진다. 불안은 미래에서 오고, 후회는 과거에서 오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행복이 지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사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 큰 감정의 파동이 없는 상태는 흔히 '평범함'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이런 평범한 시간들이다. 무사함, 안정감, 예측 가능성은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지속적인 행복의 기반이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사실은, 행복이 늘 긍정적인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안과 슬픔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이 삶 전체를 잠식하지 않도록 중심을 유지하는 일이다. 현재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다. 이것은 행복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 삶을 크게 바꿀 필요는 없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비교를 줄이며, 지금의 상태를 완전히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달라진다.


더 나은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의 삶을 부정하지 말자는 제안이다.


결국 "행복,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렇게 귀결된다. 우리는 행복을 너무 멀리 두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완벽한 조건 뒤에 숨어 있는 보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내는 방식 속에 있다.


지금의 삶을 임시가 아닌 본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행복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행복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 위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관심 있는 분은 필자가 집필한 "행복 어디에 있을까?" 에세이를 교보문고 등을 통해 e-Book으로 만나보실 수 있음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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