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은 왜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가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를 전격 제명한 이후, 당은 심각한 정치적 시험대에 올라있다.
제명 결정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은 오히려 정당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개적으로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고, 당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중추라 할 중진 의원들의 존재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당의 위기 국면에서 중진의 역할은 분명하다. 갈등을 중재하고, 지도부를 견제하며, 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책임 있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힘 중진들은 집단적으로 침묵을 선택한 듯 보인다.
특히 당의 전통적 기반인 영남 지역 다선 의원들조차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의 미래보다 차기 공천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씁쓸한 뒷말이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소극성이 아니다. 국민의힘 내부에 고착된 정치 문화와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다름 아니다.
첫째, 공천 중심의 권력 구조
한국 정당 정치에서 공천은 곧 정치 생명의 연장선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 의원일수록, 지도부와의 불편한 관계는 곧 정치적 위험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공개적인 비판이나 소신 발언이 "다음 공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둘째, 계파 갈등의 장기화
이번 제명 사태는 단순한 윤리 문제를 넘어,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갈등의 연장선에 있다. 특정 편에 서는 순간, 중진들 역시 갈등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정치적 중재자라기보다 이해당사자가 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심리가 침묵을 강화한다.
셋째, 책임 정치의 실종
정당은 선거 기구이기 이전에 공적 책임을 지는 정치 공동체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쟁을 회피하는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누적시킬 뿐이다.
단기적 선거 계산이 장기적 신뢰를 잠식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침묵이 결코 중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진들의 침묵은 현 지도부의 결정과 방식에 대한 사실상의 묵인이며, 동시에 당내 민주적 토론의 공간을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유권자의 눈에는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정당", "책임지는 어른이 없는 조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당내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개성이 강화돼야 한다.
중대한 인적 조치와 노선 갈등이 밀실에서 결정되고 사후 통보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책임 있는 발언을 하기 어렵다. 공개 토론과 공식적 의견 표명의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공천 시스템의 신뢰 회복이 필수적이다. 공천이 지도부나 특정 계파의 영향력 행사 수단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의원들의 침묵은 반복될 것이다.
명확한 기준과 예측 가능한 절차만이 소신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중진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하다. 정치 경력이 길다는 것은 더 많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당이 흔들릴 때 침묵하는 중진은 안정 요인이 아니라 불안 요인이다.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사태는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 드러난 국민의힘의 침묵과 회피의 문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당의 위기는 외부 공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다. 국민의힘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은 결국 다른 답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