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Sep 17. 2022
"언더도그마" 현상, 어떻게 봐야 할까
살며 생각하며
'언더도그마'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과 악을 판단하려는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약한 자는 선하고, 강한 자는 악하다"라고 믿는 것을 전제한다.
사회과학에서 언더도그마는 약자를 뜻하는 언더독과 맹목적인 견해, 독단을 뜻하는 도그마의 합성어로 해석되고 있는 데 특히 정치권에서 요즘 자주 인용하는 것 같다.
작가 마이클 프렐이 2012년에 '언더도그마'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프렐은 자신의 강경 보수 성향을 기반으로 언더도그마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강약과 선악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설명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언더도그마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에서 생겨났다. 보편적으로 강자보다는 약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 언더도그마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스스로 자기 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쉽게 놓이기 때문에 도덕적 관점에서 약자를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먹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점을 악용하여 약자 코스프레하면서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억지 주장까지 관철시키려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 많이 우려된다.
따라서 언더도그마 상황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이성보다 감성을 더 중시해서 자칫 원칙과 절차마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전에 바쁜 출근 시간에 세종로 거리를 막고 벌어졌던 금융노조 시위는 언더도그마의 악용사례 다름 아니다. 연봉 1억 원이 넘는 사람들이 약자 코스프레할 수 있는 베짱이 어디서 나온 건지 많이 궁금하다.
약자는 배려 대상이 되기 쉽고 또 사람들이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동정과 공감을 보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누구는 무고한 피해자이고 누구는 억압적인 악당이다" 이런 식의 극단적 판단으로 치닫게 되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질 우려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언더도그마가 일어나는 이유를 살펴보면, 본질적으로 여론이란 것이 휘발성이 강하고 비이성적이며 감정적이고 쾌락주의적이며 즉흥성이 커서 무계획적이다. 특히 대두된 논제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분석할 의욕이 저조해서 희생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자신들의 이동권 보장을 내세우며 바쁜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세우고 시위를 한 장애인 단체에 대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비판이 상식적이었다면 자신이 희생양 코스프레한 기자회견들은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 많이 헷갈린다.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는 지극히 당연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그것을 무기 삼아 억지스럽게 약자 코스프레하는 언더도그마 현상은 지양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그런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