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Nov 20. 2022
역사책을 읽다 보면 조광조의 죽음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의 죽음은 상반되게 해석된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 조광조 입장에서 볼 때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조광조는 일관되게 임금을 향해 충성스러운 의견을 냈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조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이 볼 때도 맞는 주장이다. 그런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반복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충언이 반복될 때 미소 지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아첨꾼을 좋아한다"는 속담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대통령실을 향해 "정치를 감정으로 하는 것 같다"면서 '아니되옵니다' 충언하는 참모가 없는 것 같다고 일갈하고 있다. 새겨들어야 할 조언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간혹 조광조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평가를 한다.
설사 맞는 의견이더라도 계속하게 되면 상사는 듣기 싫어하고 결국은 멀리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하물며 절대 권력을 갖고 있는 임금이 신하의 계속된 지적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광조를 시샘하는 무리들도 당연히 덤으로 존재하게 되는데, 그들은 조 씨가 왕이 된다는 '주초위왕' 소문을 만들어 퍼트리기 까지 한다.
마침내 훈구파가 퍼트린 조광조에 대한 거짓 소문이 에스컬레이션 돼서 임금(중종)까지 전달되고, 조광조의 충언은 점차 소음으로 들리다 결국 사약을 받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것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잔소리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싶다. 부모의 "다, 너 잘 되게 하기 위한 거다"를 앞세운 지나친 관심이 정작 자식한테는 잔소리가 되고 결국은 어떤 얘기도 듣기 싫은 소음으로 변하는 현상을 자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올곧은 의견이더라도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면 반복해서 하지 않는 게 가정이나 사회에서 나름 현명하게 사는 방법 아닐까? 생각하면서 '잔소리'를 색소폰 음률에 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