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Nov 16. 2023
'서하객'은 명나라 말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중국 최고의 여행가이자 탐험가이다. 본명은 '굉조'이고 하객은 호였으나 본명보다 호로 더 많이 불린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흔히 중국의 '김정호'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명산을 탐방하였지만 유람이 아닌 탐험으로 폭포나 호수의 수원지를 찾아내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전인미답의 봉우리를 오르는 등 탐험을 한 사람이다.
서하객은 아마도 가슴 뛰는 일에 자기 인생 전부를 걸지 않았나 싶다. 어린 시절 글방에서 공부할 때부터 지리서를 경서 아래 감추고 남몰래 읽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나이 17세 때 집안 노비들의 반란으로 서하객의 부친이 사망하자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으나 홀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던 그에게 어머니가 "사내대장부는 천하에 뜻을 두는 법"이라고 하면서 어찌 너를 울타리 속의 꿩이나 뜰에 묶인 망아지처럼 꼼짝 못 하게 하겠느냐? 호령을 듣고 명산을 돌아다니며 지리적 탐구에 생애를 바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서하객의 어머니가 "대장부란 큰 뜻을 가져야 한다"며 아들에게 "멀리 여행하여 견문과 지식을 넓혀야 한다"라고 강조했으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원유관을 만들어주기까지 했고 아들과 함께 산천을 유람하면서 "앞장서 걸으며 멀리 떠나기를 주저하는 아들을 안심시켰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서하객은 이러한 모친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22세 때부터 원유관을 쓰고 여행길에 올랐으며, 그 후 34년에 걸쳐 강서, 절강 등 17개 성을 다니면서 대지의 이곳저곳에 그의 발자취를 남김으로써 굴지의 여행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처음 명산대천의 절경을 구경하던 목적에서 차츰 과학적 조사를 위한 여행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서하객이 조사한 자료들은 1950년대 중국 과학원 지리연구소가 각종 현대식 기기를 사용하여 측량한 결과와 큰 차이가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특히 용동, 석순, 종유석의 형성에 대한 해석도 근대 과학의 분석과 일치했다고 하니 그의 정확하고 세밀한 과학적 지식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가는 곳마다 여행에서 본 각지의 산하, 지형, 풍토, 풍습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는데 서하객이 죽은 뒤 애석하게도 많은 부분이 없어졌다고 한다. 계회명 등이 남은 원고를 정리해 "서하객유기" 10권을 펴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서하객이 처음 쓴 원고의 1/6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서하객이 "서하객유기"에서 황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표현한 말은 너무 유명해서 황산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말을 되새긴다고 한다.
"오악귀래 불간산, 황산귀래 불간악"
- 오악을 돌아보면 다른 산들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돌아보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맞춤형 삶이 있다. 그래도 당차게 자기 꿈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다 간 서하객이 조금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 늦지 않게 신발끈을 죄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