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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스님, 입적을 보면서

살며 생각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2번씩이나 역임한 대한민국 불교계의 '진시황'이라 불렸던 자승 스님이 11월 29일 경기도 칠장사 요사채에서 소신공양의 방법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자승 스님은 유서를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자승 스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간에 나도는 여러 괴소문을 의식한 듯 조계종 총무원에서 신속한 진화에 나서지 않았나 싶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계에는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일붕선교종 등 여러 종단이 산재하고 있다. 종단 성격에 따라 수도승, 대처승, 유발승 등 일반인과 거리가 있는 지점도 꽤 많이 있지 않나 싶다.


자승 스님은 사찰의 운영과 여러 사무를 관장하는 '사판승'으로 불려 왔으며 일반 대중과 접촉하면서 포교의 일선에 있었지 않나 싶다. 종단 내 인사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잡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승 스님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전후 정치판에도 등장해서 '정치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조계종 노조원이 봉은사 앞에서 스님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등 종단 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막강한 권력 아래 조용한 숨죽임에 대해 어떤 이는 '빛'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봉은사 주지였던 -특히 자기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명진 스님을 매몰차게 내치는 등 자승 1인 독주의 '그림자'도 꽤 많이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승 스님은 2009년 단독 후보로 출마해서 역대 최고의 지지율로 총무원장에 당선된 후 사망 직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불교 조계종 체계를 확실하게 정립했다"라고 하는 자승이기에 특히 많은 구설이 나돌기도 한 것 같다.


반면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은 법정 스님과 같이 '이판승'의 대표 주자 아니었나 생각된다. 참고로, 이판승은 경전 공부 등 개인의 참선을 중요시하는 스님을 일컫는다.


성철 스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8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때 해인사를 찾았지만 "세상에선 대통령이 어른이지만 절에 오면 방장이 어른이므로 3배를 안 하면 만나지 않는 게 낫다"라고 해서 만남이 무산됐다는 일화가 있다.


특히 그는 "나를 만나려면 3,000배를 먼저 하라" 하면서 일반 대중과의 접촉을 극히 꺼려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나는 지옥으로 간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여러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끝까지 함께 못해 죄송하다. 종단 미래를 잘 챙겨달라" 유언하면서 오전에 조계사 영결식을 거행한 후 오후에는 자신이 출가했던 용주사에서 다비식을 마지막으로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게 된다.


자승 스님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도움을 받으면서 불우하게 성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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