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와 제갈량' 리더십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사람들은 진수 선생이 집필한 '삼국지'와 나관중 선생의 '삼국지연의'를 적어도 한번쯤은 접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대화도 하지 마라"할 정도니 삼국지의 위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특히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 젊은이라면 유비가 조조에 밀려서 형주로 쫓겨와 창업 정신마저 빛이 바래가고 있다가, 어떻게 재기의 발판을 구축했는지 삼국지를 통해 많은 내공을 축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삼국지를 대하면서 유비가 제갈량과 어떤 관계를 설정했는지? 그리고 그 둘이 어떻게 해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보면 흥미롭다. 특히 유비 사후에 공명의 유선에 대한 충성심은 약속 즉 '신의'에 대한 큰 가르침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유비와 제갈량의 리더십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유비는 한 제국의 황숙이라는 명분 하나로 관우, 장비와 '도원의 결의'를 하고 함께 창업을 선언했지만 중앙 정권을 장악한 조조, 지방에 근거를 둔 원소 등 호족들 틈바구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전전 긍긍한다.


당연히 유비는 관우, 장비 말고는 어떤 인적 물적 기반조차 없어 물적 기반이 풍부한 조조, 원소 그리고 강동의 손 씨와 상대조차 안됐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여기서 유비는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누구보다도 '내가 변해야만 한다'는 변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특히 인적 집단의 보강 없이는 자신의 대업을 이루기는커녕 생존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삼고초려'하는 등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제갈량을 만나게 되는데, 제갈량의 '천하삼분의 계책'에 못마땅해하는 관우, 장비를 향해 "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것이다"하면서 "두 번 다시 시비 걸지 말라"며 두 동생의 시비를 정리한다.


분명 공명은 난세에 목숨이나 부지하려고 밭을 갈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관중, 악의에 비유할 만큼 가슴속의 포부가 원대한 인재였다고 생각한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제갈량과 유비의 만남에는 분명 '서로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따라서 어떤 분야에서건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사람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은 자신을 인재라고 평가해 주는 사람을 위한 제갈량의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갈량은 유비가 비바람을 무릅쓰고 문 앞에까지 찾아와서 요청함에도, 문을 닫고 있다. 당사자를 만나지 못함에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거듭 찾아오게 만드는 제갈량의 '고 거고 타' 책략과 또 자존심을 묻고 거듭 찾아가는 유비, 둘 다 대단한 인물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유비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러 인재 중 '봉추'보다 "와룡(제갈량)'을 삼고초려하면서까지 먼저 찾았을까? 황숙이 자존심을 굽혀가면서까지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특히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유비 같은 배포로 자발적으로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을 과감하게 통째로 변신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도자 꿈을 좇는다면 자신도, 주변에 있는 사람도 피곤하기만 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도루묵'이 된다.


지도자는 "큰 나무 아래서는 작은 나무도 자랄 수 있지만, 풀밭 아래서는 이끼만 자랄 뿐이다"는 격언을 교훈 삼아 '필요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라고 하는 '수구 추동'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주변에 인재가 모인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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