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Nov 26. 2021
사람들이 요즘 너무 바쁘게 일상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집을 나서면 대부분 정해진 룰에 충실히 적응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가끔씩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하고 귀가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 '주도적 삶'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삶의 자기 결정권'은 '주도적 삶'의 다른 표현으로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라고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의 삶을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으로 채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가진 돈이 많은데도 더 많은 돈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탕진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또 이미 높은 곳에 있으면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내일로 미루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무도 묻지 않고 또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에야 비로소 자신이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음을 허무하게 깨닫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살아버린 인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놓쳐버린 삶의 환희를 되찾을 수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 아닐까 싶다.
물론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는 게 철학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또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는 삶은 비천하고 허무할 뿐이라는 것이다.
숱한 고난을 받고 살다가 모진 핍박을 받아 죽을지라도, 스스로 뚜렷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면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생의 품격과 성패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 '카뮈'는 "지금 이 순간, 자유로운 존재로서 있는 힘을 다해 살라"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카뮈는 어떻게 했을까? 있는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일했고, 놀았으며, 사랑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문득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 '헤밍웨이'가 떠오른다.
"삶의 자기 결정권"
멋진 용어 아닌가? 이 순간 "정말 내가 주도적 삶을 살고 있는가?" 한번 숙고하는 시간 가져봤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1ms?)도 곧 과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