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Aug 13. 2024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 관련 책을 집필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소위 '40대 기수론'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김영삼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장택상 총리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공천을 받아 약관 26세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YS는 42살의 소장의원이었지만 4선 의원에 원내총무까지 지내 차기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는 전도유망한 중진의원이다.
1969년 11월 8일 남산 외교구락부에서의 일이다. 김영삼 원내총무의 발언을 소개한다. "우리 야당은 빈사 상태를 헤매는 민주주의를 회생시키는 데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다져 앞장서야 할 사명 앞에 서 있습니다. 나는 이 중대하고 심각한 사명의 대열에서 깊은 의무감과 굳은 결단, 그리고 벅찬 희생을 각오하면서 1971년 선거에 신민당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을 당내 동지들과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야당을 발칵 뒤집어버린 폭탄선언인 '40대 기수론'이다. 당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정해졌던 같은 당의 유진오 총재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유진산이 새 총재로 선출된 뒤에 일어난 일이다. 자신의 보스였던 진산에게 당돌하고 무모해 보이는 '뒤집기'를 YS가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김영삼의 측근인 조윤형이 김대중을 찾아와서 "김 의원께서도 40대이니 후보 경쟁에 나서 김영삼 총무와 경선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권유한다.
김대중은 "나는 이번이 아니라 1975년 선거가 목표이고 의식적인 세대교체에는 반대입니다"라고 답변한다.
그리고 측근인 김상현은 "형님이 앞장서서 출마선언을 할 필요는 없소. 일부러 먼저 나서 당 안팎에서 두들겨 맞을 일은 아니잖소?" 하면서 만류한다.
그러자 김대중이 "나도 그런 생각이네. 김영삼이 먼저 선언한 다음 나서는 게 좋겠어" 대답한다.
하지만 이 말은 김대중의 진심이 아니었다. 치밀한 준비를 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에서 YS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난 뒤 부랴부랴 출마선언을 준비했다고 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
해서, 아직도 간간이 시중에 나돌고 있는 소문과 달리 "DJ의 철저히 발톱을 숨긴 전략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