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현대 사회의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성장을 상징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극단적인 노동 착취와 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 무균실과 방진복, 청정 장치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노동자는 생산 효율과 기술적 완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와 시간을 끊임없이 내어준다. 노동자의 신체는 단순한 생산 도구로 환원되며, 반복적 동작과 장시간 근무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신체적·정신적 손상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삼성전자와 LCD 공장 노동자들의 사례가 반도체 노동자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올림에 따르면, 반도체 및 LCD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 제보는 230건에 이르며, 그중 79명은 이미 사망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산업 구조적 폭력의 증거다. 반복적 작업, 화학물질 노출, 극도로 민감한 무균실 환경이 결합되어 노동자의 신체를 서서히 파괴하는 과정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러한 환경에서 노동자의 삶과 권리는 체계적으로 소거된다.
무균실은 단순히 청결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노동자를 극도로 통제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산업적 장치이며, 인간과 기계가 완벽하게 연동되도록 설계된 체계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 반복되는 버튼 조작, 정전기 제거 장치 사용, 방진복과 마스크 속의 숨소리 하나까지 모두 노동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적 피로와 신체적 손상은 배제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몸을 장치에 맞추어 끊임없이 재편성해야 하며, 그 대가는 장기적 질병과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이어진다.
반올림의 투쟁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황상기 대표와 전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의 산재 인정 투쟁에서 시작된 이 단체는 노동자의 신체적 피해와 권리를 사회적·정치적 사건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강남역 8번 출구의 노숙 농성, 매일 7시의 ‘이어말하기’ 퍼포먼스, 방진복 퍼포먼스와 플래시몹, 온라인 서명 운동 등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노동 착취의 구조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증명하고 기록하는 과정이다. 천막 설치 통제, CCTV와 경비를 통한 24시간 감시는 노동 착취를 넘어 권력과 사회적 통제의 현실을 체험하게 한다. 노동자는 이제 단순한 생산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싸우는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단순한 산업재해를 넘어선다. 반복적·장시간 노동, 고강도 정신적 집중, 화학물질 노출, 방진복 착용으로 인한 육체적 부담이 결합하며 노동자의 신체는 점차 기능을 상실한다. 장시간 작업과 미세먼지, 유해 화학물질에의 지속적 노출은 면역 체계, 생식 능력, 신경계, 호흡기 등 전반에 걸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은 조직적 관리 체계 속에서 감추어지거나 최소화되며, 노동자는 보상과 보호 장치 없이 노동을 지속해야 한다.
무노조 경영 체제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사실상 소거된다.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과 진상 규명 요구는 기업과 사회의 저항에 부딪히며, 노동자는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고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반올림의 기록과 활동은 이 싸움의 중심에 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법적·사회적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는 개인적 신체적 피해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 구조를 직면한다. 반복적 작업과 극도로 민감한 환경은 노동자를 단순 노동력으로 환원하고, 건강과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제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겪는 물리적·심리적 과정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무균실 안에서 방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손끝과 팔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과정, 미세먼지와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환경, 정밀 장비 조작과 시간 압박 속에서 느끼는 신체적 긴장과 정신적 피로,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 질병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는 장치의 일부가 되지만, 동시에 장치의 요구와 구조적 폭력 사이에서 균열과 고통을 경험한다.
반올림의 투쟁과 기록은 단순히 사건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의 신체적 피해와 사회적 권리를 연결하며, 산업 구조와 경영 방식이 인간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입증한다. 강남역 농성장에서의 퍼포먼스, 이어말하기, 방진복 플래시몹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노동자의 몸과 권리의 실체다. 이 활동은 반복적이고 고된 노동, 신체적 손상, 구조적 억압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결국 반도체 산업은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성장을 위장한 폭력적 구조 속에서 인간의 신체와 권리를 소모한다. 노동자는 반복적 작업과 유해 환경 속에서 신체를 기계적 효율에 맞춰 재편성하고, 그 과정에서 질병과 피로, 구조적 폭력을 경험한다. 반도체 노동의 현실은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니라 인간과 권리, 효율과 권력 사이의 구조적 균열을 드러내는 생생한 증거다.
우리는 이 산업적 폭력의 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신체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정치적 장치는 무엇이어야 할까?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정책적 접근을 넘어 산업 구조와 노동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
[사진출처=투데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