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 육아하기
100일 된 아기와 동남아로 다시 이사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100일 되는 시점에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적응을 시작하고 한숨 돌리던 차에 임신 때문에 한국에 갔으니 다시 새롭게 시작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우리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둘이 여행 가방처럼 옷가지만 달랑 들고 이곳으로 올 때 보다 아기와 셋이 되어 오니 책임감이 막중해졌다. 작은 것에도 예민해지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아졌다.
어느 곳에서 육아하든 사람 사는 곳 비슷하지만 한국에서 100일까지 키우고 오니 이곳만의 장단점이 보였다.
먼저 장점은 집에서 아기를 케어하는 것은 여기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선택이지만 유모, 가사도우미, 기사 등 한국보다 적은 돈으로 사람을 써서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곳은 유모 문화가 있어서 맞벌이하거나 어느 정도 소득이 되면 현지인들도 유모를 많이 쓴다.
이유식 시작하고 하루하루 정신없을 시기에 같은 또래 키우는 지인이 유모 쓰는 것을 보고 너무 편해 보이기도하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성향에 따른 선택인데, 육아에 관해서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인지라 나는 유모는 쓰지 않기로 했다. 가끔 ’왜 그랬니 어린이집도 없는데..‘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하하.
대신 상주 가사 도우미를 쓰면서 집안일은 도움을 받고 있다. 집안일만 줄어도 육아가 훨씬 수월해진다.
육아하면서 잠시 숨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기도 했다. 부담 없는 비용으로 인력을 활용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자기계발 할 수 있으니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반면 내가 사는 이곳에서 육아하면서 느낀 몇 가지 단점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걱정하지 않았던 깨끗한 물과 전기, 이유식 식자재 같은 것들도 걱정이 되었다. 깨끗한 물이야 이중 삼중 필터를 설치하면 되지만 주택에 살다 보니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최고 길었던 6시간 정전으로 열심히 만들어 얼려놓은 이유식 재료들이 다 녹아버렸을 때는 내 멘탈도 녹는 것 같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한국에서는 생각지 못한 불안요소다.
다른 하나는 병원이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한인 병원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아기가 아플까 봐 더 불안한 이유다.
7시간 정도의 비행이 힘들었는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아기가 아팠다. 새벽에 39도가 훌쩍 넘는 고열로 동네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혹시 코로나 인가 싶어 검사를 하러 갔었다. 고열인 아기가 36도 정상 온도가 나오는 고장 난 체온계를 들고 온 순간부터 절망적이었다.
최근 어느 날은 아파서 컨디션 안 좋은 아기를 안고 병원 가려고 한 시간을 달리다 온몸으로 세 번의 구토를 받아 낸 적도 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한 시간 이동한다는 것은 아이도 고생이고 참 힘든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정보육을 하다 보면 아기랑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것은 곤욕이다. 가끔은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도 되고 아기도 더 잘 놀고 낮잠도 잘 잘 텐데, 사계절 내내 덥고 벌레가 많다 보니 실내를 제외하고 야외 활동은 쉽지 않다. 잘 걷고 노는 거 좋아하는 두 돌이 된 지금 매일 가까운 몰에 출근 도장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가 오지도 아니고 살만한 곳이긴 하지만 병원, 문화생활, 교육에 관해서는 좋은 인프라를 갖춘 곳은 아니다 보니 아쉬운 점들이 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2년간 아기를 육아하면서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집에만 갇혀 있다 보니 너무 우울했다. 아이를 보면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자꾸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 나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았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돌 전 까지는 남편과 다툼도 잦았다. 이 때는 이곳에 괜히 온 것 같고, 여기 와서 육아하니 더 힘든 것 같고, 이 길을 선택한 나 자신까지도 미웠다.
사실 어디에서건 처음 엄마가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국에 있었다 해도 쉬웠을 리가 없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맞벌이를 했을 테고,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일을 하든 안 하든, 한국에 있든 해외에 있든 엄마 아빠로서의 책임감과 육아의 고충은 있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해 본 적도 없고 참고 인내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
아이를 낳아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더니 사실이었다.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나 자신이 먼저였던 내가 이제는 아이를 우선순위에 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제일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아이가 두 돌이 되었다. 밖에 데리고 다닐만하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숨통이 트인다. 아이가 클수록 편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나 같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노력하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환경 탓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가 사랑으로 키우면 어디서건 바르게 잘 자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엄마로서도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