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동남아 해외살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딨겠어
해외 나와 살다 보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한국에 있는 '가족'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각별했다.
가까이 살아서 자주 보기도 했고 어린 시절 기억에 할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거, 가지고 싶은 거 다 들어주는 할머니였다.
해외 나가 산다고 했을 때 '이제 너도 못 보겠구나' 그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서운해하는 거 알면서도 나 사는 게 바빠서 ‘할머니는 항상 할머니 집에 있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있고, 내가 전화하고 싶을 때 하면 되니까! 하면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할머니는 십몇 년 전 대장암이라는 큰 병을 이겨내고도 정정한 편이셨다. 사는 거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 볼 때마다 할머니도 많이 늙었구나 쇠약해졌구나 했지만
부모만큼이나 당연한 존재로 생각했다.
가끔 할머니의 꽉 막힌 생각이 답답할 때도 있었고 ,
만나면 하는 잔소리도 듣기 싫었고,
돌아가신 아빠의 대신이라는 것을 알면서 소홀했고, 아기 낳고서는 한국 가서 할머니집 가는 게 멀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집에 갔다 오거나 전화를 하면 끝에 꼭 '와줘서 고맙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 안 하던 말을 붙였다.
사실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집에서 간다고 나설 때 서운함의 눈빛을. 혼자 있는데 가끔이라도 와주거나 전화해 줬을 때 반가움에 대한 고마움이라는 것을. 당장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아 그랬다는 것을.
나 좋자고 이곳에 왔지만 사실 할머니나 엄마한테는 불효이기도 하다. 결정을 하더라도 너무 그들을 안중에 없이, 단호하게, 반대하지 못하게 몰아붙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만나는 나는 여전히 살갑지 못하고 항상 짜증만 많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프다.
다행히 위독한 것은 아니지만 90이 넘은 연세라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설날에 전화했을 때 보다 그 몇 주 사이에 급격하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
아빠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후회한 경험이 있으면서, 두 번은 그렇게 안 하겠다 다짐하고서도 또 똑같이 반복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나.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으면서도 부모님의 마음과 희생을 아직도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곧 한국에 가서 다행이다.
한국에 가기 전 항상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메모장에 정리하고 간다.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 방문의 목표를 '가족과 양질의 시간 보내기'로 정해야겠다. 후회 없이 최대한 많이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와야겠다.
이제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은 용돈을 보내 드리는 것도 좋아하시겠지만, 앞으로 남은 날들 자식들이 시간을 내어 드리는 것이 더 효도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나의 엄마는, 할머니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린 걸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번이라도 더 전화하고 한국 가서 하루라도 더 보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해외 나와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당장 가족한테 달려가지 못하는 이 마음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미안한 마음 하나 더 짊어지고 산다 생각하고 똑바로 잘 살아야겠다. 잘 사는 모습 보여주고 한 번이라도 더 시간 내어드리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듯하다.
더 자주 할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전화한 건데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니 마음이 안 좋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나의 소중한 가족부터 돌아보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