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증 있는 사람의 해외살이란

퇴사 후 동남아 해외살이

by Indah



하필 비행공포증


해외에 살다 보니 제일가고 싶은 곳이 한국이다.

일 년에 최소 한 번은 왔다 갔다 해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한국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일 년 중 두 번은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한국에서 살 때보다 비행기 탈일이 자주 생긴다.


이런 와중에 나는 비행공포증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발리 여행 가는 비행기에서 처음 이상징후를 느꼈다. 내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는 곧 추락할 거고 나는 죽는다 라는 확신이 들면서 이성적으로 사고가 되지 않았다.


극심한 난기류를 경험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한 경험이었다. 이후로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 정도의 패닉이 온 것은 지금까지 총 세 번이다.


제주도 갈 때랑 신혼여행 갈 때도 똑같은 증상을 겪었다. 세 번의 경험을 하고 나니 정말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가 아닌 공포에 떨어야 하는 그 기억에 더 힘들고 무섭다.


세 번의 경험 후에도 평소 비행기를 자주 타는 건 아니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타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할까 봐 무서워 계단으로 다니며 일상이 불편해질 때 즈음, 뭔가 잘못되었구나를 느끼고 그때서야 병원을 찾았다.


검사해 보니 나는 불안도가 매우 높고 온몸이 긴장 상태라 밸런스가 다 깨져있었다. 특정 트라우마가 원인이 아니라면 타고났을 수도 있고 원인은 다양하다고 했다.


불안증 중 나는 비행기나 엘리베이터처럼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추락에 대한 공포심이 컸던 것이다.


정말 이상했다.

분명 과거에 놀이동산 가면 롤러코스터를 신나게 즐겼던 적도 있었고 비행기 탔을 때도 아무 생각 없을 때가 있었는데 갑자기 이럴 수가 있나?


어렸을 때 유난히 밤에 무서움 타고 불안도가 높긴 했지만 패닉이 올 정도의 공포는 없었는데!


갑작스럽긴 했지만 이제라도 병원을 찾아서 다행이다 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전보다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비행기 타는 것은 스트레스다.


내 몸이 긴장 상태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약인데 몸이 반응하지 않으니 예전 같은 패닉 상태 까지는 안 오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까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비행기 티켓 사놓은 날부터는 비행기라는 게 도대체 안전한 지부터 내가 타는 항공사의 역사까지 다 찾아보는 이상한 짓도 한다.


비행기 타면 자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한국 가는 비행기는 밤비행기 밖에 없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약기운이 아니면 잠을 못 잔다.


그마저도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는 아기 보느라 약도 못 먹었다. 아기 케어하느라 바빠서 덜 고통스럽긴 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면 긴장감이 풀리면서 몸살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게 어디냐 싶다.


사실 맨 처음 발리 가는 비행기에서 패닉이 오기 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발리 여행 가기 1년 전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 며칠 밤을 못 잔다던지, 밤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커진 상태로 살았다.


암흑 속에 살다가 온 자카르타와 발리는 행복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복잡한 일들 때문에 심신이 지친 상태였는데 그런 환경을 벗어나 다른 곳에 오니 몸과 마음이 쉬는 느낌이었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좋은 곳이다!

이것이 인도네시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이후로 발리 같은 휴양지도 아니지만 지금 내가 사는 곳에 일정까지 무리해 가며 휴가로 한 번 더 왔다 갔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인생 앞날을 알 수 없다더니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힘들 때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좋은 기억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곳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해외에 살고 있으니 불안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좀 더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좋아지고 있고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매번 부딪힌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평생 내가 가진 불편함과 싸워야 한다면 끌어안고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려 한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지만 나는 분명 한국에 잘 도착해서 반가운 가족들과 친구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잘 즐기다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


요즘 비행기 관련해서 안 좋은 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남은 올 한 해의 시간 동안에는 누구나 안전하고 무탈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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