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의 양면성, 큐리스(QRIS)와 버려지는 동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인도네시아의 아이러니

by Indah



지갑이 필요 없는 도시, 큐리스(QRIS)의 시대

과거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거주했던 이들이 최근 다시 자카르타를 방문해 가장 놀라는 변화 중 하나가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다.


이곳에서는 '큐리스(QRIS)'라 불리는 QR코드 결제가 일상이다. 대형 쇼핑몰 안에서는 현금 거래가 아예 불가능한 곳도 적지 않다.


마트, 카페, 심지어 작은 가판대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거래된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배달 문화의 확산은 자카르타에서 '현금 거래'를 지워가는 듯하다.



'안 주고, 안 받아요' 외면받는 동전

현금 결제가 사라지면서 가장 먼저 소외된 것은 낮은 단위의 화폐, 특히 동전이다. 이곳에서 1,000루피아는 원화로 100원도 채 되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현금 거래 시 잔돈을 주고받는 과정을 서로 번거로워하며 생략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 현금 결제를 할 때조차 마트 직원마저 동전을 건너뛰곤 한다. 그렇게 갈 곳 잃은 동전들은 결국 집안 한구석에 방치된다.


계산대 옆에는 거스름돈을 넣는 기부함이 놓여 있고, 그곳에 동전을 밀어 넣거나 심지어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조차 외면받기 일쑤다.


길거리에서 신호등 대신 도로 질서를 정리해 주는 이들에게 적어도 동전이 아닌 지폐 단위의 팁이 주어지는 이유는 이런 배경이 있다.



최첨단 결제 시스템 속, 현금만을 고집해야 하는 이들

아이러니한 것은 편리한 디지털화가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소비 계층에 따라 물가 격차가 큰 이곳에서, 여전히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 중 본인 명의의 은행 계좌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은행 계좌가 이들에게는 심리적, 경제적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최소 잔액 규정과 유지비, 서류 등은 그들에게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장벽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최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 후, 배달원에게 물건을 받고 직접 현금을 건네주는 '선주문, 후 지불'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 본인의 은행 계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에서 연결되는 결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최첨단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그 음식을 배달하러 온 기사에게는 두툼한 현금을 건네는 모습.

큐리스 사용이 흔해졌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현금을 사용하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도시, 자카르타

큐리스 결제와 계좌 하나 없는 이들의 현금이 공존하는 자카르타의 풍경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체되어 있는 양면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집 가사도우미도 처음에는 본인의 계좌가 없었다. 아주 최소한의 현금만 남기고 대부분을 부모님 계좌로 송금해야 했고,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배달시켜도 늘 현금 결제만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은행 계좌를 만든 후 본인의 물건도 사고 직접 번 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권리를 얻는 일임을 깨달았다.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은 외면받을 때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일상의 편리함 너머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동전의 무게,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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