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맞이한 엄마의 환갑
딸에서 엄마가 되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여 동생 부부와 온 가족이 발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카르타에서야 2시간 안으로 가지만 한국에서는 7시간 조금 안되게 걸리는 중장거리 비행이다. 인도네시아에 살지 않았더라면 가까운 여행지를 두고 '발리'까지 왔었을까 싶다. 우리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가족들을 초대해 조금이라도 더 편한 여행이 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게 이곳에 사는 장점 중 하나이다.
전부터 막연히 '엄마 환갑 때는 꼭 같이 여행 가야지'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발리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인도네시아에 온 지도 어느덧 4년 차. 30대 초반에 와서 벌써 한 아이를 둔 30대 중반의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싶었는데, 나이는 나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벌써 환갑이라니! 항상 슬림한 몸을 유지했던 엄마가 최근 들어 전에 본적 없던 살이 붙은 모습을 보니 엄마도 나이 먹는구나 체감할 수 있었다.
타지에 살다 보면 내가 이곳에서 적응하느라 겪는 마음고생도 있지만, 한국에 남겨둔 가족들이 가장 아쉽다. 나이 들수록 친구보다 가족들이 더 많이 그리워진다. 엄마의 생일 당일에 함께해 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번 여행동안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 뿌듯했다.
전에 나만 보았던 발리 바다의 멋진 일몰 풍경을 사진으로 자랑만 하다가, 엄마와 나란히 앉아 함께 바라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지만, 나도 엄마가 된 이후에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 입장이 되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나 보다. 나보다 한참 어렸던 나이에 엄마가 되어 우리를 키웠을 엄마를 생각하니, 출산과 육아가 무엇인지 알기에 그 시절의 엄마가 더 짠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에서 집안일 도움이라도 받고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기도 하는데도 육아와 모든 상황이 감옥 같을 때가 있는데, 우리 엄마는 친정 엄마도 없이 시댁 옆에 붙어살며 도대체 숨구멍이 무엇이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주변은 물론 나조차도 나 자신보다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딱 한 사람, 여전히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은 나의 엄마가 유일하다.
나이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이제 내가 엄마에게 기댈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먼 타지 생활에서 가장 많이 전화하고 찾게 되는 사람,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은 역시 엄마뿐이다.
아이를 낳은 후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좋은 것, 좋은 음식 더 많이 경험하게 해 줘야지'. 여느 부모가 그렇듯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아이는 이렇게 끔찍이 생각하면서, 정작 내 부모에게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내 부모는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렸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 터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아이도 소중하지만 부모님과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짧을지 모른다.
우리가 독립할 때까지 온전히 책임지시고, 이제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여전히 일하느라 바쁜 우리 엄마. 여행 중 잠깐 나눈 대화에서 엄마는 70대 이후에는 엄마의 건강도 어떨지 모르니 기회가 닿는다면 60대에 이런 여행도 괜찮겠다 말하는데 왠지 그 말이 서글펐다.
표현이 적은 엄마가 손녀에게 함께라서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이제부터 효도는 돈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멀리 살아서 자주 볼 수 없고 챙겨줄 수 없다는 것 자체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얼마 전 할머니를 떠나보내면서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정말 시간이 얼마 없었구나, 멀리 있으니 바로 달려갈 수도 없구나' 하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면서도 우스울 정도로 짧게 느껴진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챙겨야겠다.
나이 들수록 늘어가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인생 난이도는 올라가는데, 나라는 사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느낌이 있다. 이런 부족한 내가 누군가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운 한편, 그들 덕분에 하루 더 버티고 오늘도 일어설 힘을 얻는다.
이제는 늙어가는 나의 부모와 자라나는 나의 아이를 위해 기꺼이 튼튼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