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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Jun 27. 2024

존재에 빛을 쏘여주자

장마철에 진입 하려는 요즘, 기압에 눌려 기상이 힘들다

비가 자주 오는 나라에 사는 사람은 우울증이 높다는데  거기에 백퍼 공감한다.

언제부터 날씨에 민감해졌는지 모르지만

비 오기 직전의 낮은 하늘은 그럼에도 여전히 좋아한다.

새도 낮게 날고 먹구름이 이마에 닿을듯 처지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빛이 아쉽지만  역설적이게도 빛이 쉬어가는 순간도 좋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우울하단다.

누구나 우울하다고 하니 자기 우울은 에스프레소 급이란다. 진하고 검고 쓰고 아프단다.

다른 사람의 우울은 아메리카노 정도로 생각하는 걸까. 

푸훗 웃음이 나왔다.

아픈 에스프레소를  잔잔한  아메리카노로  만들려면 한시바삐 자기를 만나줘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친구 말끝에

사람은 사람을 쬐야 온전한 사람이 된다던 싯구가 생각났다.

사람을 쬔다는 건 상대를 오롯이 살피고 인정한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존재에 대한 주목이 삶의 핵심이라고  정혜신 박사가 말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만을 각인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나 집중을 받는 경험이

흔치 않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제각각 마음앓이를 한다.


존재자체에 대한 주목은 사랑에 빠진 순간이 가장 강렬할 것이다.

상대의 말 한마디, 눈빛 한 조각,  행동 하나에도 섬모가 모두 일어설 정도로 집중한다.

초집중의 순간이 지나면  존재에 대한 관심은 박모의 빛처럼 옅어진다. 그 후로는 다 아는 것처럼 별다른 주목 없이 서로가 서로를 스쳐간다.

긴긴 외로움과  소외의 시간이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하여 사람들과 열심히 소통하는 것 같아도 다들 공갈빵처럼 텅 비어간다.


존재에 대한 주목이 없는 세상은 

우울증과 정서적 고통이 뒤범벅 된 아픈 사회다.

내 친구도 아픈 사회의 피해자 중 일인이다. 그리고 나도 당신도 모두 그럴것이다.

말은 안하지만 모두 아프고 쓰리고 힘든 현실을 견디고 있을 뿐.


이제부터 

존재에 빛을 쏘여주자

그가 지닌 것이나  기능적 관점과  상관없이

무한하고 따뜻한 빛을 보내주자.

나도 빛을 쐬야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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