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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의 비결

by 고훈실

물봉선이 피었다

요정의 고깔같은 뒤통수를 또르르 말고

물가에 흐드러진다

내가 그를 처음 본건 시골의 도랑가였다

쓰레기로 뒤엉킨 작은 물가에 점점이 뿌려진

진분홍빛 물감들

설마 꽃이랴싶어 다가갔다

그런데 꽃이었다 만개한 꽃송이들은

얇은 바람 한 조각에도 군무를 추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몽환적이고 찬란한

존재의 아우라였다


그뒤로 가을의 기미가 느껴지면 물가를 찾았다

물봉선을 알현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지만

그마저도 싱겁게 끝나고 만다

물봉선은 우리 가까이서 생의 이파리를 흔들고 있다


가지산 자락 물가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물봉선을 보니 올 가을도 개막식을 끝냈다

내겐

물봉선이 피어야 비로소 가을이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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