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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Jan 07. 2025

루틴 권하는 사회

    

‘새벽 5시 기상. 영어 회화 30분. 달리기 30분. 따뜻한 물 1컵 마시고 감사 일기 쓰기..’

요즘 SNS에 넘치는 루틴 중 하나다. 현대 사회에서 루틴은 효율적인 삶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성공한 사람들의 하루를 보면 모든 활동이 철저히 계획되어 있다. '5시 클럽'이나 '미라클 모닝'과 같은 키워드는 루틴이 곧 성공의 비결임을 강조한다. 


루틴(routine)은 ‘정해 놓은, 판에 박힌, 타성적인’이란 뜻이다. 얼핏 부정적 늬앙스를 풍기는 이 말에 우리 사회가 온통 매료된 듯하다.


바야흐로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닌 루틴 권하는 사회로 변모한 느낌이다.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이런 함묵적 동의는 사회 전반에 비가시적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압력에 ‘트렌드’라는 멋진 이름이 붙으면, 우리는 트렌드에 뒤처질까 가자미 눈과 물속 백조의 발을 장착한다.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한쪽으로 기운 가자미 눈과, 백조의 우아한 자태를 지탱하기 위해 허우적대는 물속 발의 고생은 지금 우리들의 메타포다.


실연의 아픔을 매일 일기 쓰기와 달리기 루틴으로 치유했다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응원과 부러움을 전하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전업주부의 무기력함을 떨쳐낸 루틴, 이직을 위한 루틴, 병을 치유하기 위한 루틴, 유명 의사의 다이어트 루틴, 갓생 루틴등 종류도 다양하다.


다들 하루를 이틀처럼 산다는 루틴 간증이 넘치는데 계속 모른 척할 수만은 없는 일.


이런저런 루틴을 기웃거리다 ‘나를 바꾼 5가지 루틴’이 눈에 딱 들어왔다.

매일 원서 읽기, 영어 공부. 여기에 운동, 독서, 일기 쓰기가 추가됐다. 원서는 힘드니까 패스했고 주 2회 회화도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플랫폼을 통한 영어 공부만 겨우 해냈다. 하지만 나머지 루틴까지 소화하려니 정말 하루가 모자랐다.


다크서클이 발등을 찍고 하품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와 입이 다 얼얼했다. 결국 작심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손 들고 말았다. 내 박약한 의지와 게으름에 속수무책 무너진 루틴을 보고 있자니 자괴감이 들었다.


쓸쓸한 영혼을 이끌고 나의 최애 장소 인 화단에 갔다. 직박구리가 나뭇가지 위에 떼로 앉아 떠들고 있었다.

‘크아아 찍찍 크락크락’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왠지 눈이 부셨다. 한없이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지만 삶의 중심에 오똑 서있는 새들. 


순간, 나를 옭아맨 루틴의 함정이 떠올랐다. 삶의 도구를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오류가 짚어졌다. 

그렇다! 루틴은 삶의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연장의 하나일 뿐이다.


2025년 새해가 왔다. 올 한 해는 감당할 수 있는 루틴으로 낭창낭창  가볍게  사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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