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마르칸트에서 출발한 낙타 행렬을 따라간다. 이 길은 실크로드. 사막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고, 마차에는 비단과 향료, 서역에서 온 진귀한 보물이 실려 있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베일이 움직일 때마다 촤르르 흔들린다. 노곤하여 눈이 스르르 감긴다.-
옛 페르시아 제국의 지도를 보다 잠시 그곳의 공주가 되어 본다. 상상 속에 웃음이 번진다.
최근 역사 공부를 하며 지도를 찾아보는 즐거움에 매료됐다. 지도를 펼치면 과거 사건의 밋밋한 나열이 아니라 사건이 펼쳐진 공간과, 그 속에서 움직인 인물들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여, 직접 그곳을 여행하는 ‘지리적 인간’이 되곤 한다.
지도를 찾아보는 일은 단순한 정보 확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의 키워드는 상상력의 확장이다. 유럽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망을 보며 산업혁명의 역동을 떠올리고, 중세의 해양 무역로를 보며 거칠 것 없는 상인들의 모험을 상상한다. 이처럼 지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의 무대다.
많이 들었지만 어디에 있는진 몰랐던 페니키아 제국과, 거기서 내려온 사람들이 건설한 카르타고를 찾아본다. 한니발 장군이 활약한 포에니 전쟁의 무대를 따라가다 보면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던 기발한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럴 때 지도는 평면도였던 역사를 단숨에 입체도로 바꿔주는 훌륭한 도구다. 역사 공부에 지도 함께 보기를 강추하는 이유다. 지도와 결합 된 역사 지식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싱싱하고 생생하다.
아버지 책상엔 늘 우리나라 전도와 세계지도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코스를 말씀드렸더니 색연필로 내가 지나는 곳을 체크해 보여주었다. 동선을 이어보니 효율적인 코스를 짜려 고심한 선생님들의 노고가 보였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발견이었다.
그 뒤로 지도를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지만 언제부턴가 다른 일에 묻혀 희미해지고 말았다.
올봄 다시 지도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지리적 인간’으로 회귀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