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
'명자 아끼꼬 쏘냐'란 영화의 명자가 아니라
울담에 고개를 걸친 채 밖을 응시하던 명자꽃 속의 명자다.
여자 이름에 '자' 가 들어간 건 일제의 잔재다.
은자.형자.미자. 순자.
온 동네를 메아리치던 자의 울림은
일제 강점기가 여자아이 이름에 남은 상흔이다.
내게도 명자가 있었다.
명자는 나랑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다. 우리는 쏘울 메이트라 할만큼
모든 걸 공유했다.
명자는 제가 씹던 껌의 절반을 내게 주기도 했다. 나는 아무 거부감 없이 그 껌을 받아 씹었고...
명자는 늘 예뻤으나 가시 성성한 봄꽃 명자가 필 때
제일 어여뻤다.
이쁜 명자는 연애도 빨라 내가 대학 다닐 때 애 엄마가 됐다.
나는 꼼지락대는 명자 아기를 신기해서 보고 또 보았다. 조가비같은 신혼방이 온통 베이비파우더 향으로 가득했던 시절. 명자는 분홍 명자꽃보다 더 화사했다.
밝을 명, 아들 자
그 이후 명자는 이름처럼 밝게 살지 못했다.
어두워진 명자는 봄날의 명자꽃을 잊었는지 통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그녀의 소식이 들렸다.
연고 없는 강원도 산골에 홀로 살고 있다는 거였다.
남편도 아이도 없이 자연인처럼 지내는 명자를 지인이 발견했다고.
명자가 보고 싶다.
당장 달려가 시간의 간극을 아코디언처럼 접고 싶다.
그녀의 웃음, 장난끼 가득한 눈빛, 봄이면 재채기에 시달리던 비염까지
모두 다 그대로인지... 아니 그대로 품고 있는지.
울담에 고개를 얹은 채 지나가던 것들을
마냥 바라보던 명자
명자꽃 속에는 애린의 명자가 들어있다. 분홍빛에 스민 봄날의 애련이
온통 가득했던 명자들
명자는 자기 생의 핸들을 뒤로 틀었다.
빠꾸다.
명자꽃에 성성한 가시들은
생의 질곡에 맞서는 당당한 빠꾸들이다.
빠꾸한 명자가 여전히 어여쁘기를
마시멜로하고 솜사탕하고 민트민트 하기를!
비로소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