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모토리 Aug 03. 2016

영원한 안식처는 없다 <그래비티,2013>

그래비티 (Gravity), 2013 _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Gravity), 2013 _ 알폰소 쿠아론>


2013년 전 세계 다양한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은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다. 조지 클루니, 산드라 블록 단 두 명의 배우만을 등장시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지난 이력을 살펴보면 이 작품이 호평을 받은 것이 당연하게 이해될 법하다.      


알폰소 쿠아론. 멕시코 출생으로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영화와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연출을 맡았으며, 숀 펜이 열연한 <대통령을 죽여라>의 제작, 최우수 SF 영화상을 거머쥔 <칠드런 오브 맨>의 각본, 연출, 편집까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하비에르 바이뎀 주연의 <비우티풀>을 제작했다. 휴~이 정도만 해도... 



영화의 줄거리는 아시다시피 단순하다.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 지구로부터 600km, 소리도 산소도 없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스톤 박사는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히면서 그곳에 홀로 남겨지는데..    


이 영화는 생각보다 복선이 곳곳에 너무 잘 깔려있어 누구나 감독의 의향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기에 관객은 의미심장하게 감독의 시선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스스로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물론 이러한 영화에 대한 극적 몰입도가 완벽한 컴퓨터 그래픽과 공간 설정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리얼리티는 시-공간적 배경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이뤄질 수 있는(발현되는) 영화감상의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 그대로 인간의 삶을 한계 짓는 삶의 공간(의식)에 관한 얘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지구가 아닌 중력이 닿지 않는 우주라는 설정이다. 근데 왜 우주일까? 우주는 아름답거나 막연한 자유가 아니다. 신이 사는 영역도 아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자막은 우주라는 공간이 인류에게는 생존이 불가능한 공간이라고 미리 밝힌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원함을 우주에서 찾는다. 지구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꿀꿀할수록 사람들은 영원의 자유를 꿈꾼다. 그것은 올려다보는 세상이다. 우주다.     



영화 제목이 왜 중력인가? 사람은 발을 디디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존재다.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관계도 설정도 의미도 없다. 딸을 잃고 막연한 삶에 지친 스톤 박사가 지구에서 보낸 삶이 의미도 없고 막연하고 도피하고픈 무중력적인 우주의 삶이었다면.... 이제 그러한 우주에서 벌어진 사고로 갑자기 죽음에 다다른 시점에서 그녀는 중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한 번이라도 발을 제대로 밟고 서 보고 싶은 것이다. 그 이유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가지도, 유일한 친구였던 매트를 우주 속으로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중력이 존재하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는 삶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중력이 존재하는 지구로 귀환하기로 작정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무중력적인 공간을 벗어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공간이 바로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였음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인간들이 느끼는 어떠한 막연함에 대한 철학적인 보고서다. 인간들이 막연하게 자유, 영원, 도피, 회피, 궁극을 쫓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고 또 가끔은 어떤 이유로 그것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거기엔 사실 막연한 공포와 정적, 무관심과 고독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중력은... 뉴튼에 의해 본격적으로 인간들의 탐구영역으로 들어오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새롭게 의심을 받게 되고, 이제 알폰소 쿠아론에 의해 또 다른 사유의 존재가 된다. 


영원한 곳이 언제나 안식처는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