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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Sep 07. 2016

낡은 기억에 바람구멍 생기다

한남동 리버탑의 마지막 추억

한줄기 바람에 공기구멍이 생겼다  



지난 2003년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나는 새로 맞이한 낡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산보를 나왔다. 허물어져 가는 한남동의 어느 낡은 아파트는 이제 헐리기 바로 직전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아파트의 존재감을 상징하는 앙상한 뼈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흉물... 그러나 이 낡은 아파트 역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인생을 빛내주었던 삶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아파트를 나의 낡은 카메라로 담아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1920년 산 나의 낡은 카메라 바디의 셔터막은 온전하지 못했고 그 사이로 공기구멍이 빛처럼 몰려들었었다. 떨릴듯한 작은 손놀림마저 쉽게 감지해내는 그 작은 바디는 흡사 낚시꾼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스스로 울음을 내뱉는 경심과도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무 노회 해서 그리고 너무 숨이 벅차, 녀석 스스로가 셔터막을 손수 찢었을 것이라 여겼다. 순간 음울했다.     



산보를 하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이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은 것이다. 사실 그전에는 세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심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_ 그게 기억대로라면 나의 말이기도 하겠지만_곪아서 터질 것들이 즐비한 병동처럼 그렇게 실체를 드러내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설마 이렇게 환부가 썩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나의 심장은 혹은 나의 폐는 흡사 저렇게 뻥하게 햇빛에 노출될 정도로 이미 심각하게 뚫려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기대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미끼 같은 존재감을 준다. 벽을 하나 둘러치고 그 조그만 공간 속에 일생의 나를 맡기는 사람들처럼... 혹은 허덕대며 살아가도 그 속에서 비비적대며 조그만 안존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의 군단처럼 떼 지어 오르고 내리면서 하루를 소비하고 있다. 우리는 온통 그런 사람들 틈에 끼여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도시는 늙고 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과거가 묻혀있는 기억의 고향이지만 그마저도 잃어버리고 때론 잊기까지 한다. 삶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시멘트가 인간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그 벽 하나를 온전히 전세 내서 살았던 이들에게 시간과 추억의 묘한 설움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한고 살아가고 있다. 산보를 마친 후 포토피아에서 필름을 현상한 후 라이트박스에 녀석을 올려놓고 바라 본 느낌은 허탈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난 그날 그만큼이나 내 가슴이 뻥하게 뚫리는 시원함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시간의 낡음과 사유의 낡음이 공명하며 빛을 발해 오래된 셔터막을 짓이겨 놓았을 것이란 여기고 통쾌하게 시원했다. 사실 1920년에 만들어진 카메라의 셔터막이 온전하다고 하는 것이 더 엽기적인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한 장으로 승부를 내려고 한다. 덕분에 말은 군더더기라고 치부한다. 그저 뻘 뚫린 저 쓸모없는 셔터막처럼 함부로 필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엉뚱한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인간의 생과 삶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생각은 간단하다. 즐겁지 않다면 모든 것은 필요 없다. 현학적이고 위선적이며 게다가 자가당착적이기까지 한 자아는 장기판의 외통수처럼 처지가 궁색하지만 끝없는 변명으로 삶을 영위해 나간다. 단지 하나, 그저 즐겁다는 명제 아래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러한 변명거리가 바로 카메라를 들고 산보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시선으로 말을 걸고 현상을 통해 그의 대답을 듣는 행위, 바로 파인더를 통한 내밀한 사색이다. 오늘 그 대답은 우울함을 정통으로 내갈기는 뻥뜷림이다. 불어오는 바람사이로 싸대기 한대를 정통으로 맞은 느낌이다.    



혼자 뭔가를 만들고 그것을 남들과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헛투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끊임없는 두려움은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한다. 따나 보고 때론 부셔보고 그리고 결국은 삶이란 별것 아니라는 생각에 어울리게 되면서 가끔은 저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서울 상공의 스모그가 나의 발랄함을 누르고 있을 지라도, 즐거운 상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즐거움을 동반하지 못한 채 한 우물을 파는 인간을 세상은 믿을만하다고 하지만 실상 그것은 개나 돼지들이 하는 짓이다.     



한남동에서 나는 돈을 보았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추억을 팔고 삶의 터전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발전소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영원히 사라지는 위험천만한 아파트를 바라보며 그 '위험천만'이라는 평가 속에 절대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을 헤아리며 세상은 정말 돈의 위력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인가... 누차 고민한다.


그냥 그럭저럭 대충 살면 안 되는가 하고 지겹도록 자문해 본다. 재미있는 일만 하면서 정말 날 건달에 한량처럼 그렇게 붉은 낯빛을 띠고 운명적인 낮술을 즐기며 그렇게 공염불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나만의 상상은 그저 대중을 음해하는 헛된 짓일 뿐인가... 

  


나는 3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살기 바쁘다는 표현을 올곧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서투른 인생 초보가 딱지를 떼어내려고 설치는 몸부림이었다. 시커먼 저 복도 끝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어떤 인연들처럼 내 인생은 이제 이 긴 터널에 접어들었다. 세울 수도 없고 빵빵대는 뒤차를 피할 수 있는 갓길마저도 없는 무법천지의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오직 잣대로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동물원에서 오늘도 나는 내 순서의 빵을 기다린다.   



나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즐거운 삶인지를 이야기 해준 사람 중 두 명이 기억난다. 한 사람은 예술가였고 한 사람은 글을 짓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처절한 즐거움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즐거움은 고통을 수반하고 그 고통 속에서 다시 어떤 즐거움을 잉태해야 하는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행위에 대해서. 그것은 즐거움을 넘어 서럽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을 즐기지 못하면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다가올 삶의 벅찬 희열을 감당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중 한 명은 기형도였고 때론 백남준이었으며 눈 내리는 길에 떠 있는 시인 최승호였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것은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 나의 범주를 정하고 확정 짓는 단순한 패턴 플레이다. 내 시야에 세상을 저장하고 그 저장된 이미지를 통해 내 속의 나를 한번 더 호출한다. 지금 내가 만나는 세상의 모든 풍경은 너무나 명징하고 확정적이다. 


오늘 이렇게 낡은 카메라가 만들어준 뻥 뚫린 이미지를 보면서 나는 낡음에 대해 다른 생각을 지니게 된다. 내 인생의 모든 아쉬운 소리들, 부족하다는 갈구의 소리들이 구멍 난 필름 위에서 처연하게 가라앉는다. 어쩌면 이 막과 저막의 사이에 인간이 드리워진 것처럼 어둠과 빛의 양면을 뜷어준 이 가느다란 빛이 오늘 나의 구세주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실은 마음이 벅차오른다.   



내일도 난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지속할 것이다. 다만 지금의 내 인생은 아쉬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부족하다는 소리들로 천지사방이 우글거린다. 내 기억 속 메모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탐욕적으로 물들어 있다. 나는 말 그대로 속물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한방 시원하게 터져주는 산보의 즐거움이 나를 꿋꿋하게 지탱해 주리라 믿는다. 그렇게 즐거움은 언제나 'ON' 이어야만 한다.  

 


즐거움도 가끔 오징어처럼 반듯하게 말릴 필요가 있다. 순수한 단백질이 타는 향기로운 내음을 맡으며 그 즐거움을 축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루어서 완성될 것이면 난 이미 즐겁지 않아도 족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천성의 게으름뱅이가 살 길은 단 하나. 그저 열심히 죽을 듯이 노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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