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북새통! 시장 골목에서
내가 자라난 동해안 작은 마을에는
그 작은 마을만큼 더 조그만 로터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로터리를 신작로라고 불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1리에서 10리까지의 경계선이 되는 그곳은 작은 그 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그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신작로에 있는 작은 시장 통이 생활터전의 분기점이자 자연스럽게 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일종의 학습 터가 되기 마련이었다.
좁은 건물 사이로 길게 양쪽 길로 나 있는 조그만 시장 속에는 근처 촌에서 올라온 야채며 채소 그리고 갓 바다에서 잡아 올라온 오만가지 해산물과 생선들이 널뛰듯 펄떡이고 있었고 그 생선들을 파는 아주머니들은 다 우리 어머니 친구 분들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늘 시장에 계셨다. 당시에는 '일수'라고 하는 계를 모든 시장 상인들이 가입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계주가 되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수를 걷으러 그 좁디좁은 시장 통을 활보하며 다니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아직 내가 어려서 집에 따로 두지 못하고, 시장 통을 누빌 때 어머니는 늘 내 손을 잡고 다니신 탓에 나 역시도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자전거를 배우면서 일수를 찍는 일은 내가 주로 도 맡아하곤 했지만 그 덕분에 작은 어촌마을의 시장 통 속에 있었던 모든 풍경들은 후일 나를 살아있게 하는 추억 중 가장 큰 밑천이 되었다.
시장 속에서 본 것을 집안에 굴러다니던 형의 스케치 북에 곧잘 옮겨 그리곤 했던 나는 사생대회에 나가면 아이들이 항상 그리는 산과 들 대신 어머니가 다니던 그 조그만 시장을 대신 그려 넣곤 했다. 담임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우리 집이 시장 한가운데 있는 줄 알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게 늘 시장엔 어머니가 있었다. 그건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시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은 언제나 정겨웠다. 후일 동네 119 응급차도 학교 정문을 찾지 못했던 꾸진 전농동에 있는 조그만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가끔 밀물 들이닥치듯이 고향 생각이 나면 툭 하고 찾아오곤 했던 곳이 바로 학교 근처의 청량리 경동시장이었다.
새벽부터 밤이 되기까지 사람들과 청과류...한약재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경동시장엘 가면 난 늘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 소리... 요란한 상인들의 호객소리.... 짐꾼들의 호루라기 소리까지 시장 속에서 넘쳐나는 소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소리였다. 흥정하고 계산하고 성공적인 상거래가 이루어진 손님과 상인의 웃음소리 뒤로 또 다른 짐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나에게 시장은 그렇게 밀물과 썰물이 언제나 교차하는 생명 넘치는 뻘 같은 그런 생존의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그동안 바쁨을 핑계로 오랫동안 가보질 못했던 경동시장엘 갔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떠들썩한 요즘 그래도 경동시장엔 아직도 생기가 활짝 돌고 있었다. 하지만 예년만 못하고 일찍 장을 파하는 가게도 여전히 많이 보였다. 이른 여름 과일을 사려고 장에 나온 사람들이 부쩍 많아 보였다. 참외를 파는 아주머니는 요즘 직접 경동시장에 나와 과일을 사가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과일 한 개라도 싸게 사려고 하는 어머니들의 알뜰함이 느껴지는 시장 통이었다. 담배 가게를 하는 어떤 아저씨는 간판에 네온을 달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고 자신만의 생존 노하우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다들 살아가기 바쁜데 뭔가 튀어야 한다는 아저씨 말씀이 가슴에 팍 하고 다가왔다. 그렇게 시장 속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며 오늘 하루 역시 바쁘게 살고 있었다. 굴비를 파는 아주머니는 2천 원을 깎아주었는데도 손사래를 치고 가는 손님을 보며 정말 짠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저런 아줌마들 많아요. 근데 쬐금 있다 보면 다시 오죠. 여기가 그래도 젤로 싸거든... 그게 무슨 고생이여... 싸게 줄 때 가져가야지... 다시 오면 안 깎아줘..."
흥정은 나름이다. 사실 사람 사는 것도 나름이다. 하지만 시장엔 언제나 나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하루를 길바닥에 주저앉아 일을 하시는 탓에 허리에 무릎 다리까지 쑤시고 고생스러워도 아들 하나 번듯하게 키워 놓고 옆집 아주머니께 자랑하는 그런 우리네 어머니들이 있다.
시장엔 살아가는 활력과 이야기가 있다. 경기가 나쁘고 경제가 어지러워지면 꼭 망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다. 시장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가 있는 그곳... 오늘 내가 시장에서 본 것은 추억의 그 이상을 능가하는 우리네 살아가는 방식 그 현실의 한 장면이었다.
추억의 북새통.. 사금을 채취하는 용도로 쓰인다는 복대기 통에 온갖 시장 소리와 사람들을 넣어 흔들면 앙금처럼 환하게 남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금보다도 값진 나만의 시장 풍경에 대한 추억이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 흔적들이 시끄럽고 어수선 해도 아직 시장 골목이 나에겐 아직도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