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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Oct 30. 2016

최승희를 위한 변명


이 땅의 모든 '최승희'를 위한 구차한 변명...근래 여성가족부가 무용가 최승희를 '한국을 빛낸 여성'에 
등재해 친일 논란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사실 내 이름도 최승희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내 이름이 이 유명한 월북 무용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다는 데에 있다. 

내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아버지가 아닌 해방 후 돌아가신 할아버지였다. 당연히 그 분은 해방 전 '아이돌'인 최승희의 공연을 직접 보러 다닐 정도로 열렬한 광팬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손자일지 혹은 손녀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동아들의 둘째아이 이름을 그렇게 덜렁 '최승희'라고 지어놓고 돌아가셨다. 물론 한자로는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최승희는 우리나라 전통무용에 현대무용을 접목한 최초의 무용인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놀라운 재능을 친일활동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현재 친일파 명단에 등재 되어있다. 친일파를 바퀴벌레보다 못한 족속으로 생각하는 나로선 같은 이름을 썼던 그녀의 친일부역이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그녀가 당시 자신의 유명세를 전시에 이용하려는 일제의 압박과 일본에 있는 딸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만주에서 일본군 위안공연을 하고,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을 일제에 헌금한 사실은 피할 수 없는 불변의 친일행각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그녀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친일행각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더라도 당시의 유명인사들이 최승희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해주는 그런 일화를 말이다....이름이 같으니 참 난감할 때가 있다. 




명월관에서 만난 최승희와 손기정


1936년 서울 명월관에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유명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모임의 동기는 마라토너 손기정의 세계재패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손기정을 위시해 당시 여운형, 송진우 등의 민족지도자들이 자리했으며, 그 자리에 최승희도 초대되었다. 오늘의 자리를 만든 여운형이 손기정에게 박수를 보내자며 손기정 만세를 외치자, 다들 박수를 치고 그를 축하했다. 손기정은 그 자리에서... 


“인간의 육체는 의지와 정신에 따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불가능할 것 같던 그 길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그 날이 좀 더 빨리 오도록 열심히 달려주십시오. 저 역시 계속 달릴 것입니다.”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운형이 다시 입을 뗀다. 


“오늘 이 자리에 소개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손군처럼 조선을 빛내고 있는 애국자지요. 최승희양 입니다.” 


우익 정계의 거두 송진우와 좌파 정치인의 대표자인 여운형은 모두 최승희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좌중이 한참 무르익는 중에 테이블 구석에서 느닷없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황국 위문공연이다 해서 벌은 돈은 다 갖다 바치고, 일본에서 계속 활동해온 최승희가 친일이라는데 뭐가 잘못된 말이야!' 갑자기 축하자리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식어버렸고, 그녀가 조용히 자리를 뜨려는데, 갑자기 손기정이 일어나 폭발하듯이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렇다면 내가 그때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뛴 것도 친일행위로 볼 것이오?” 


손기정 옹은 평소에도 최승희의 친일파 논란이 나올 때면 늘 흥분하며 자신도 일장기를 달고 뛰었는데 그렇다면 자신도 친일로 볼거냐며 불 같이 화를 내곤 했다고 한다. 최승희가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전통 춤을 승화시켜 당시의 민중들을 위로한 것과 일장기를 달고 일본 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해 마라톤 우승을 일궈내 민족 자존심을 지켜낸 손기정 선생의 업적을 하나로 보는 시각은 정말 잘못된 시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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