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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y 22. 2017

공구 오월, 바보님을 보내던 그 날

2009년 5월, 어느 날의 기록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


아버지는 아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먹고 살기가 팍팍한 것이 첫째 이유였다. 둘째 이유는 첫째 이유를 넘어서는 심각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런 따분한 문제를 묻지 않았고 아버지와 아들은 권력을 소유하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사유하며 살아간다. 갈등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권력의 근처에라도 가기를 기대했다. 그 좁은 문. 하지만 아무나 원한다고 들어갈 수 없는 문. 그것은 권력의 문이었다. 아들은 그럴 역량이나 깜냥이 되지 못했다. 대신 아들은 그 권력의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발휘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권력의 적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도무지 자랑스럽지 않았고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냐며 반문했다. 지금 우리의 가족들은 이토록 슬프고도 처연한 세대 간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그런 전쟁 통에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많은 국민들이 슬퍼했다. 우리나라 정치의 지역구도와 정서를 통합하고 세대 간의 골 깊은 분쟁을 해결하는데 앞장섰던 퇴역 대통령이 허망하게 돌아가신 것이다. 황망한 사건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슬퍼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너나 잘하라고. 보통 장례식에 찾아가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뼈저리게 불쾌한 감정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대체 이렇게 격한 분노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참으로 궁금했다. 끝없이 치닫는 저 분노, 사실 이러한 분노는 밥그릇 싸움에서 뒤처진 정치권과 기득권의 누군가가 만들어낸 우화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의아한 것이 권력이란 맛도 모르고 심지어 가져본 적도 없는 일반 서민들이 이런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들 자신이 누군가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해충적 무뇌를 가졌다는 반증을 몸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이미 정치적인 철학 따위는 존재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방전후사의 인식 또한 무지의 수준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리라.


서러운 장대비

슬픔은 어느 누구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래서 슬픔이란 더 서럽고 아련한 법이다. 슬픔은 상식을 누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 많은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광장은 그렇게 뛰어나온 사람들의 것이었지만 결국 폐쇄되고 작은 못에 갇힌 붕어처럼 입만 뻥끗 대다가 그만 질식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광장이 죽은 날. 서러운 장대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그 비를 상식적이고도 대단히 인간적인 격식으로 여겼을 것이다. 나는 그날 거기에 있지 않았지만 슬픔은 공유할수록 커진다는 이상한 비유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서로 나누지 못하는 슬픔도 있구나 하는 자책에서 벗어나 내가 왜 슬퍼하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분노는 늘 그렇듯 장대비를 서럽게 동반한다. 


잡초와 민주주의

북망산 골짜기로 떠나간 사람을 애타게 찾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황무지를 일군 사람. 황무지가 옥토로 바뀌고 결실의 바람이 부는 순간 그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들은 황무지가 옥토로 바뀌면서 그 결실을 두려워했다. 그 땅에 나무를 심지도 뽑지도 못하게 했다. 그가 말하면 무엇이든 반대했다. 그를 지지한다는 말에는 차라리 경악을 하며 빈정댔다. 땅주인들은 머슴이 자신의 땅을 일구는 것이 못내 불편하고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이 나라 권력의 주인은 이미 국민이 아니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 땅을 거친 황무지로 다시 만들어 버렸다. 논쟁거리가 없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땅으로 다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황무지에 뿌리를 내린 것이 있었다. 튼튼하고 생명력이 질긴 잡초이자 민초, 민주주의는 그렇게 서럽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났다. 그는 비가 되어 언젠가 다시 이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잡초가 민주주의로 다시 살아나 새로운 생명의 땅을 만들어주지 않겠는가. 


역사와 진정성

역사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것이기도 하다. 유러피안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피로써 구렁텅이로부터 건져냈다. 그리고 누구든 상식과 원칙을 침범할 수 없도록 기본정신을 성문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경계선에서는 시민 누구도 평등하다. 말로만 하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 나 같은 겁쟁이들은 책에서 정의와 진리를 찾지만 역사를 만드는 진정한 이들은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가 있었다. 총알받이가 되어서라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역사적 명제를 가슴 깊이 새겼다. 이러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부활할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변명이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드는 이유는 저 벽보에 붙여진 단어, 기호, 그림들이 모두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는 호빗이었지만 그들은 멀쩡한 중간계 백인들이었다. 호빗이 반지를 버리지만 주인공들의 사랑은 그렇게 백인류에게 바쳐진다. 불쌍한 호빗. 어쩌면 골룸.


죽음의 열매

세상과의 인연이 끊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서 죽는 사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다가 노환으로 자연사하는 사람, 누군가의 분노에 의해 타의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 그렇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래서 이 세상은 불이 꺼지는 어둠의 시작을 강렬한 오르가슴으로 성찬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격렬한 생명의 잉태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다시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변기통에 버려지는 정자의 숫자와도 같게 사람들은 무수하게 죽어나간다. 하지만 그 죽음들은 규칙적인 표식도 의미도 없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죽음은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그가 세상과의 인연을 끊은 것에 대한 분노, 고통, 자책, 슬픔, 애도, 다짐 등이 한 여름 힘없는 노인이 흘리는 침처럼 끈적거리면서 비리하게 엉켜 붙는다. 그 비리한 내음이 가슴속에 어떤 싹이 되어 붉은 열매를 잉태시킨다. 한동안 그 열매는 잊히지 않고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이 죽음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산자여 따르라

우리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데도 그런 만만함은 여기저기에 배어 있다. 평생에 걸쳐서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살아온 사람에 대한 예우는 거의 없다. 왜 그렇게 사느냐며 손가락질당하고 비웃음을 받지 않는 것이 참으로 다행인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늘 바쁘다. 누군가의 인생에 푹 빠져서 즐길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죽음과 맞바꾸었다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내가 이렇게 살아왔소,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소매 자락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미 산자가 아니니 따르지는 말고 돌이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의 이 웅장한 프레젠테이션이 대체 언제쯤 다시 결실을 맺고 다시 광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저 살아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떠나면서 남겨준 부채.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역사를 만들라는 어떤 메시지이니까... 


바보와 농부


완당은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세상 최고의 멍청한 수작이라며 혹평했다. 진정한 명필은 엄청나게 좋은 붓-왕희지가 난정서를 쓸 때 사용한 쥐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에서 기인할 수밖에 없음을 안 그는 진정한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그래서 현실엔 밝지만 처신엔 어둡다. 하지만 바보는 말했다.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는다고' 이 말을 듣고 전국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야 했음에도 2000년 4월 13일 선거가 끝난 부산은 조용했다. 파티의 후유증이었을까? 허삼수의 망령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바보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농부들조차 바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몽둥이를 부러뜨려

'미친놈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니는 형이 있다. 어떻게 들으면 대중과 군중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간극의 경계를 비아냥거리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피의자와 피해자의 오묘한 심리적 상관관계를 읽어내기에 더없이 편리하게 활용되는 말이자 표현이다. 대중이 미쳐서 군중이 되는 사이... 몽둥이는 놀랍게도 바로, 즉각 등장한다. 광장에 널린 두더지 게임기처럼 몽둥이는 미친 두더지만을 잡아야 하는 책무에도 불구하고 토끼도 때려잡고 심지어 맹수의 왕인 사자도 때려잡는 행운을 누리기까지 한다. 몽둥이는 그래서 힘이 지배하는 정글의 왕이 된다. 왕으로 등극한 몽둥이는 안타깝게도 귀가 없다. 하지만 몽둥이는 그게 외려 편했을 것이다. 세상이 이럴진대... 누가 누구를 지켜준단 말인가? 그가 우리를 지켜주려고 원칙을 지키는 사이 우리는 그를 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황무지의 새싹인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비 내린 뒤 우후죽순처럼 돋아날 민초들의 함성을 기대하면서... 


이상한 프레임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중동을 읽는다. 내가 물었다. 왜 조선일보를 읽느냐고 했더니 '그럼 뭘 봐'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실로 엄청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인정하고 싶은 것들만 읽고 존중한다. 그것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기어이 그것을 행하고 유지한다. 무서운 이데올로기다. 한번 침투하면 죽을 때까지 퇴치가 안 되는 반공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걸리면 해탈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 프레임 밖에 돌아가신 이가 추구하는 통합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 프레임에 갇혀 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프레임이다. 


민주주의는 절차다

민주주의를 계승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 소꿉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난 그날 광장에서 서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 정권이 잘 해서가 아니라 이 정권은 법적인 근거 아래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아준 정권이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해서이다. 이 사건이 국가를 전복하는 위해요건을 가질 수 있다는 관습법의 범주안에 있다손 치더라도 탄핵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망자의 희망일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분노한 대 국민 의지의 발로정도로 여긴다면야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정당한 민주절차에 의해 이루어질 때만이 그 효력이 증대되고 민주적인 권력이 국민의 소유로 돌아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꽉 찬 3년을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민주는 그렇게 인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참아내는 것은 당장 죽음으로써 항거하는 것보다 쉽겠지만 그것이 잉태하는 위대한 결과물은 아마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어떤 놈이 진짜 나쁜 놈이고, 어떤 놈이 진짜 좋은 놈인지를 가리는 것이 내가 살기 위해... 정녕 내가 이 땅에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라는것을.. 그리고 그것은 나의 유일한 정치행위인 투표 뿐이다. 


꺼져라 양비론

양비론을 경계하자. 진정으로 이런 놈들이 나쁜 놈들이다.  꼴통 수구라고 하더라도 누구처럼 자신 있게 떠드는 자들이 외려 적진의 장수답다고 할 것이다. 이 놈도 나쁘고 저 놈도 나쁘고, 그래서 나는 둘 다 나쁜 놈들 사이에 있는 중간계라고 맛보기만 하는 파렴치한들이 진정한 매국노이자 마른 명태처럼 발기발기 찢어버려야 할 적패대상들이다. 누구 때문에 민주주의가 저렇게 거꾸로 처박혀야 했는지를 아는가? 그것은 바로 이런 파렴치한들이 세상을 안다고 역정을 내면서 꼴통 같은 짓거리를 천직으로 알고 떠들고 다니면서부터이다.


슬픈 봄

스스로 찾아온 수많은 조문객들 행렬에 봄보다 환한 향기를 띠고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줄지어 끼여있다. 그녀들은 북적거리는 슬픔의 행열 속에서 봄내음을 풍기며 가신 이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그렇게 젊음은 살만한 세상인데 어찌 먼저 가셨을까. 땀내, 분내, 향내, 꽃내가 뒤엉켜 그곳은 마치 반야부의 《유마힐 소설경》속의 한 무대가 하나였던가 싶었다.


다시 반성하고 자책하며

술자리에서 누가 그랬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그에게 오늘을 중언해야 할 빚이 있다고. 역사에 대한 증언 말이다. 아마도 이런 무기력한 시기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정치적 반목이 없어지지 않고 토착화되어 일제와 수구의 잔재들이 우리 정치를 정녕 퇴보시킨다면 지난 10년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회고할지도 모른다.


'지난 10년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종북좌파의 선동과 현혹에 온 국민들이 잠시 눈멀고 귀먹어 나라의 성운이 극악의 끝을 달린 시절이었다. 이는 대중정치, 선동정치의 대표적인 본류로서 역사에 차마 기록되지 말아야 할 본보기로 온 국민들은 이를 늘 경계하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불라 불라. 불라'


이 어찌 아니 되리라고 감히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 광장에서 다시 만나자

나는 그 날의 일을 잊지 않기로 했다. 마냥 잊어먹는 것이 인지상정의 굴레라고 하지만 그래도 술 한 잔 놓고 조문하면서 생각한다. 가면의 틀을 쓴 '칼의 노래'를 상기하며 다짐한다. 양날의 검을. 그 시퍼런 움직임을 기억하고자 한다. 도륙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가 없는 자들에게 보검은 사치일 뿐이며, 그 검의 자취는 비린 추억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강해져야 하므로. 자각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기본적 원리이다. 자각을 통해 얻은 굳은 의지가 너를 바로 서게 할 것이니 그것을 믿자. 그리고 우리, 거기 푸른 광장에서 다시 만나자.


| 2009년 5월 대한문 시민분향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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