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평리-와수리]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마을

CHAPTER 1_ 추억을 달리는 시내버스 (서울-춘천)

by 다모토리
고석정 꺽지와 벽초 홍명희


동송터미널 앞 이평리 정류장에서 여러 명의 승객을 태운 농어천 동송-지포리 버스가 장자벌에서 우회전해서 본격적으로 463 국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낮 바람은 찰랑거리고 풍경도 스치듯 살랑거린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다. 이내 버스는 장흥리의 장흥초교를 지나 고석정 입구에 다다른다. 철원을 찾는 외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보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이 고석정 국민관광단지다. 물론 나 같은 시골길 우선 주의자들에게는 인위적으로 잘 꾸며진 이런 관광지는 필수 선택사항이 아니지만 이 고석정이 왜 유명한지를 아는 사람은 우리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이곳은 천혜의 자연경관뿐 아니라 자칫 잊고 지나칠 수도 있을 소중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 때 큰 여울이라 불린 한탄강 중류에 만들어진 멋들어진 2층 누각이다. 이 고석정을 만나러 가는 길에 느닷없이 우뚝 서 있는 동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임꺽정 동상이다. 옛 구전에 의하면 임꺽정은 고석정이 있는 산 정상에 석성을 쌓고 자연동굴을 은거지로 삼아 활동했다고 한다. 임꺽정은 변신술도 곧잘 부렸는데, 관군이 몰려오면 민물고기인 꺽지로 변해 한탄강 강물 속에 숨었다고 해서 ‘꺽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하는 구담이다.



이런 임꺽정을 전 국민의 흠모 대상으로 만든 이는 바로 최남선,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말기 3대 천재 작가로 불리던 벽초 홍명희였다. 그 유명한 소설 <임꺽정>을 집필한 홍명희는 일제 강점기 시절 휘문과 오산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동아일보’와 ‘시대일보’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했는데 1928년부터 ‘임꺽정 전’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건강과 시국 사건에 쫓기느라 여러 차례 소설 집필을 중단한 채 월북함으로써 끝내 작품을 완결하지 못했다.


홍명희는 임꺽정에 대한 전설 중 하나인 고석정 민물고기 꺽지에 대해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임꺽정의 부모가 그를 낳고 백정의 아들로 살아갈 일이 걱정스러워 “걱정아, 걱정아”라고 부르던 것이 훗날 “꺽정”이가 되었다고 쓴 것이다. 그가 주인공의 이름을 왜 꺽정(걱정)이라 설정하고 한자로 표기할 때는 林巨正(임거정)이라고 적었는지 훗날의 독자들은 그의 책을 보고서야 비로소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곳곳에서 임꺽정을 내세워 세상에 대한 부조리를 타파할 것을 주장했으며, 임꺽정의 의욕과 열정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승화시켰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취해있기 전에 걱정을 한 아름 담은 민물고기 ‘꺽정이’를 내려다보며 시국의 안위를 걱정했을 천재 작가의 고뇌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고석정이다. 임꺽정의 부릅뜬 두 눈이 물가에 서려있는 고석정을 뒤로하고 지포리에서 하차한다. 지포리에서 오래전부터 유명하다는 맛 집인 철원 막국수를 들러 든든한 한 끼니를 때우고 와수리를 가기 위해 신 철원 버스터미널까지 털레털레 걸어간다. 이곳의 행정지명은 갈말읍 지포리인데 여기를 굳이 신철원이라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원래 철원의 중심은 철원 노동당사에서부터 고려 건국 당시 도읍이던 태봉국도성, 즉 철원읍 홍원리 풍천원 일대에 이르는 지역이었는데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대가 모두 파괴되면서 철원의 중심은 동송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이후 갈말읍 지포리에는 '신 철원'이란 또 다른 중심지가 조성됐던 것이다. 조금 걷다가 보니 신 철원 중심도로에는 강원도의 여느 읍내처럼 조그마한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풍경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곳부터는 처음 포천에서 올라오는 길과 겹쳐있던 경흥대로와 다시 만난다. 43번 국도가 원산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나는 남쪽 지점인 김화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길의 여정은 경흥대로의 안타까운 남쪽 끝 지점과 만나는 길만 남았다. 그 끝의 목적지는 와수베가스로 더 유명한 와수리다.

원칙과 상식이 난무한 3005번 버스 안

신 철원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와수리행 3005번 시외버스에 올랐다. 여기에서 와수리까지 직접 가는 시골 마을버스는 없다. 와수리 인근은 군부대와 관광지가 대부분인데 서울에서 직접 내려오는 시외버스가 있을 뿐 철원군 마을 사람들이 와수리까지 가는 건 주로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도로 운행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내가 탄 버스가 문혜리를 거쳐 다시 43번 국도에 오르니 기분이 묘해진다. 이 길로 단숨에 휴전선을 지나 원산까지 내달아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젠간 북한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유유자적 유람하는 날이 꼭 오리라 생각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버스가 신 철원 시내를 벗어나자 이내 한적한 농촌 풍경이 나타난다. 김화를 향하는 43번 국도의 4차선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지만 지나다니는 차량은 많지 않다. 아마도 통일이 되는 그날을 위해 미리 이렇게 시원하게 길을 뚫어 놓은 것일까. 지나다니는 차량에 비하면 길은 필요 없이 넓어 보인다. 하지만 이 길은 언젠가는 뚫려야 할 길이고 통일이 되면 사람들이 부지런히 남북을 왕래해야 하는 길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길을 넓게 만든 이의 통 큰 선견지명이 장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 통일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시원한 도로를 벗어나 왼편의 조그만 길을 따라 쪼르르 어느 마을로 들어간다. 지경리로 빠지는 길이다. 마을의 모양새가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사는 동네다. 군사 접경지역인지라 도시 같은 느낌은 없지만 시외버스정류장이 있을 정도로 나름 규모를 갖추고 있다. 대득봉 아래 자리한 지경리는 철원군 갈말읍에 속해 있는데 마을 위로 남대천이 흘러 물이 풍부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인근에 자연마을로 신촌, 불당곡, 갈곡이 있다. 아마도 이 버스는 이 지경리에서 다른 손님들을 또 태워서 와수리로 가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3005번 시외버스는 겉은 번지르한 시외버스지만 들여다보니 들를 곳은 다 들리는 마냥 시골버스였다. 버스가 서자 정류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쏜살같이 후다닥 버스에 올랐다. 와수리로 가는 승객이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버스에 오르자마자 기사 분에게 냅다 분통 터지는 말투로 짜증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아니 도대체 몇 시간을 기다려야 버스가 오는 겁니까? 이보슈 기사양반, 타는 사람이 없는 조그만 동네라고 그렇게 무시하고 휙휙 지나쳐도 되는 거유? 정말 화딱지가 나서...”


아주머니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운전하고 있는 기사 분에게 씩씩거리며 계속 말을 붙이고 있다. 아주머니의 흥분이 좀 가라앉자 그제야 기사 분이 헛헛하고 웃으시며 아마 앞차가 무슨 바쁜 일이 있어서 그냥 질러갔을 거라며 여러 번 해봤음직한 너스레로 아주머니를 살살 달랜다. 하지만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아주머니의 분풀이는 버스가 와수리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달랑 승객이라고 한 명 더 있던 나는 와수리를 가는 내내 기사 분과 아주머니의 타박과 핑계를 들으며 적당하게 찬동하거나 적당하게 말리느라 적잖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아주머니의 말은 아주 지당한 말씀이었다. 그분의 말인즉슨 이렇다. 먼저 버스라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비즈니스라고 해도 돈을 내는 사람을 존중하고 먼저 태워야 하는 것이 원칙 아니냐. 그 원칙을 어기고 돈만 더 벌려고 하면 사람이 버스를 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버스기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편한 것보다는 오매불망 버스만 기다리고 있는 고객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상식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상식을 어기고 기사 자신이 편하고자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다면 이건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난 이날 버스에서 의외로 그 흔하디 흔한 상식과 원칙이란 말을 줄기차게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그 말이 머리 언저리 한구석에서 뱅뱅 맴돈다. 상식과 원칙이란 얼마나 쉬운가.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철떡 같이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으로 힘든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반칙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칙은 왜 생길까? 그것은 나만 잘되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욕심이 원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버스 얻어 타기 만큼 힘들어진 우리네 세태를 생각해 보면서 그 허물어진 상식과 원칙 속에서 손해를 봐야만 했던 다수의 서민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조금 전에 지나친 고석정으로 다시 돌아가 물속에 있는 꺽지를 꺼내 임꺽정으로 부활시켜 놓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일었다. 민초의 분노는 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가?


드디어 버스가 와수리에 도착했다. 기사 분과 나는 우리나라에 아주머니 같은 분만 계시면 진짜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거라며 엄치를 척 세워드렸더니 버스에서 고함치고 흥분했던 게 조금 부끄러웠든지 발그레 웃으면서 씩씩하게 제 갈 길을 가신다. 난 그렇게 3005번 시외버스 안에서 뜻하지 않게 원칙과 상식에 대해 골몰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자 이런 것이야말로 시내버스 여행이 주는 조그만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와수리, 산과 물을 넘는 소통의 삼각지대


원칙과 상식의 움직이는 강의장이었던 3005 버스가 도착한 종점은 김화읍 와수리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원산으로 가는 경흥대로의 남쪽 마지막 분기점이 여기다. 경흥대로는 여기 김화에서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뚝 하고 길이 잘렸다. 지리학적으로 확인하는 분단의 슬픔이다. 김화읍의 와수리는 고려시대에 청기와 공장에서 고려자기를 제조해서 기와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고 대부분 기와집이 많아 와수리란 지명을 얻었다고 한다. 이제 여기서 더 깊은 골짜기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다음 목적지인 산양리로 넘어가는 버스는 고작해야 하루에 몇 대 뿐이다. 그것도 시간에 맞춰 버스가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단다. 역시 시골에 오니 버스 시간표가 생각대로 일정하지 않다. 급하게 이동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이런 산골동네는 조급증을 낳게 한다. 그렇지만 어쩌랴, 여기는 내 맘대로 이동이 불가능한 산골 오지. 마음의 평정을 찾아 조바심을 버리기로 한다. 기다림도 때로는 좋은 심신수양이 되거늘.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좋게 먹어도 산양리 버스를 기다리려면 아직 서너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기왕 기다리는 김에 넋 놓고 앉아있기보다는 발 품을 팔아 와수리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좀 전에 고석정을 지나쳐 오다가 43번 국도로 갈아 탄 문혜리에서 시작해 아주머니가 탔던 지경리, 청양리,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와수리를 잇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군수물자를 보급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김일성이 한국전쟁 당시 미 8군에게 이곳 일대 철원평야를 빼앗기자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은 이제 주변 군부대 장병들이 ‘와수베가스’라고 부르는 마을의 번화가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일단 와수베가스의 한 분식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손님은 나 빼놓고 모두가 군인들이다. 이런 풍경 참 오랜만이군. 늦은 점심을 먹고 와수리 마을의 뒷산을 올라 멀리 남대천을 조망한다. 주변으로 산세와 물이 좋은 여름에는 타 지역에서 캠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서울에서도 이곳 와수리는 직통 버스가 있을 정도다. 나름대로 와수리라는 마을을 풀어보니 산세와 물세가 좋으니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말로 해석된다.



사실 와수리로 대표되는 이런 산골동네의 모양새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사유방식에 걸맞는다. 우리 조상들은 세상 만물의 형체를 하늘, 땅, 사람의 유기적 관계로 이해했다. 하늘이 절기별로 햇볕과 비와 바람을 내려준다. 그러면 땅은 하늘이 내려준 기운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베풀어준 풍요로운 ‘삶의 터전’에서 함께 일하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땅은 다시 크게 산과 강으로 나뉜다. 두 산 줄기 사이로 물길이 나고, 또 두 물길 사이로 산줄기가 자라듯이 산과 강은 땅이라는 인간의 터전에 불가불의 관계를 형성하는 주역이다. 이렇게 산과 강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땅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러한 이치는 큰 도시는 물론이고, 이러한 작은 시골마을에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산과 강을 합쳐 강산, 산천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강과 산 사이에는 반드시 사람 사는 마을이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산줄기에 기대고 물길에 안기어 삶의 터전인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볼 때 마을의 경계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되고, 마을 사람들은 경계를 넘어 물길의 건너편을 나루로 건너고, 산줄기의 건너편을 고개로 넘는다. 그래서 나루와 고개는 마을의 유일한 소통의 무대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철원의 이 삼각지대는 동서남북을 아우르며 소통을 이뤄내는 천혜의 자연적 요새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와수리는 좌로는 고석정의 물길을 건너고, 동으로는 말고개를 넘어 화천으로 향하는 이 지역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지름길이자 기점이었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집권적 도시에서 벗어나 실핏줄을 타고 철원이라는 고을까지 내려오다가 이제 드디어 산과 물만이 사람 사는 터를 제공하는 마을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잔잔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와수리에서 산양리로 넘어가는 길목은 이제 많은 군부대들로 가득 차 있지만 과거의 눈으로 이 지형을 본다면 진정한 자연인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산골에서 유유자적 산책을 하다 보니 해가 적잖이 빠르게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제 해가지기 전에 산양리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뒷산에서 내려와 와수리 시내로 나가보니 미처 외지로 떠나지 못한 전역 병들이 워킹데드의 좀비들처럼 와수베가스의 신작로를 우왕좌왕 거칠게 헤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또한 얼마나 즐거운 풍경인가.





⓹ 농어촌 동송. 지포리 / 이평리(동송터미널 앞)-지포리(철원)

철원에서 가장 운행 횟수가 많은 마을버스이다. 그래도 배차간격은 40분 정도 된다. 신철원(지포리)에서 이 버스를 타면 고석정으로 갈 수 있다.

*운행시간 : 첫차 08:10, 막차 21:20 *배차간격 : 평균 40분 / 평일 16회


⓺ 시외 3005번 / 신철원 버스터미널-와수리

경기고속 소속으로 서울 수유역에서 철원군 와수 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시외버스이다.

*운행시간 : 첫차 06:20, 막차 20:40 *배차간격 : 평균 50분 / 평일 5대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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