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Siena)
캠핑카에 전화벨이 울렸다
인터라켄에서 유럽의 겨울을 제대로 느끼고 있던 우리에게 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선배가 유럽 배낭연수를 온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캠핑카 여행을 한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는 부러 연락을 한 것이다. 선배의 일행들은 배낭여행의 들머리를 로마로 잡았다고 했다. 얼쑤, 우린 이때다 싶어서 한국 먹거리가 거의 떨어져 가는 판이라 긴급으로 반찬거리를 부탁하고, 모레 도착 예정인 선배 일행을 로마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12월 2일, 하얀 이밥에 북엇국 그리고 감자조림을 만들어 진수성찬으로 아침을 차려 먹었다. 이제 시동을 걸어 스위스를 벗어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오전 11시에 출발한 캠핑카는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긴 이동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 날 이동한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이탈리아 시에나까지의 거리는 장장 677km.
캠핑카는 직접 운전을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운전자가 쉽게 지쳐버린다. 그래서 교대로 운전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우리와 캠핑카 여행의 콘셉트 자체가 좀 달랐다. 그들의 경우, 캠핑카로 목적지까지 이동을 하고 나면 그곳 캠핑장에 차를 콕 박아놓은 다음에 그냥 집으로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우리처럼 무지막지하게 긴 거리를 주행하는 경우는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곳 사람들처럼 한 목적지에서 오랜 기간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는 처지라 운전 교대는 필수적이었다. 혹시 누구라도 혼자서만 운전하기로 작정하고 이 여행을 시작한다면 두고두고 말리고 볼 일이다. 유럽에서의 운전이 편하고 안전하다지만 상당히 지루한 길도 많이 있으므로 혼자는 그만큼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직진주로였다. 몇 시간을 핸들을 돌리지 않고 내려왔는지 가물가물한 길 위에서 몇 가지 생각이 언듯 스쳐갔다. 스위스의 경우, 땅 덩어리가 대부분 심각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몇 대에 걸쳐 자신들 스스로 그 악조건을 억척스럽게 극복하고 한 땀 한 땀 관광자원으로 일궈냈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는 좀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조상들이 고스란히 물려준 탐스런 자연환경과 관광자원 덕분에 지금까지도 많은 후손들이 큰 이득을 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스페인에 유럽 관광수익 1위를 물려주었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탈리아는 유럽여행의 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돈 좀 있는 전 세계 풍류객들의 버킷리스트에 빠짐없이 올라와 있다는 환상적인 와이너리 투어는 아직도 이탈리아 여행의 특산품으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아름다운 땅으로 진군 중이었다. 기원전 218년 한니발이 코끼리를 타고 넘었다는 알프스 산맥의 몬테로자 발밑을 가로질러 로마까지 내려가는 아피아 가도는 흡사 막대기와도 같았다. 졸다가 일어났다가 또 졸다가 일어나도 끝없이 펼쳐진 길. 마치 영화 속 지중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토스카나 지방의 고대 시민들의 도시 시에나(Siena)에 도착했다. 너무 오랫동안 차에서 시달렸던 터라 도착하자마자 모두 그냥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음 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캠핑카를 도시 성채 외곽에 주차하고 시간을 거슬러간 듯한 중세도시로 걸어 들어간다. 시에나가 있는 주변 지역은 근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 모두가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유명한 토스카나 지방이다. 14-16세기에 걸쳐 휴머니즘과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유럽 문화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 곳이다. 물론 경치도 끝내준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짧은 시간에 감상하려면 다이안 레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2003)>을 보시라! 이 영화 한 편에 담긴 토스카나의 풍경들은 실연을 당한 여인조차도 망연자실 넋을 빼어놓을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으니.
시에나의 골목 안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유명한 시에나 두오모를 지나 골목마다 가득 찬 쇼핑거리를 거닐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시에나의 명물 캄포 광장. 이곳을 찾은 전 세계의 관광객들은 중세도시의 시민들이 의견을 직접 나누고 고대 시민들의 권리를 주창한 그 광장에 모여 한가로이 뜬금없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조갯살처럼 오므라진 광장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광장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 모두 다 한가로워 죽겠다는 표정들이다.
나도 문득 여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처럼 광장의 한가운데 있는 가이아의 분수 아래 한동안 죽치고 드러누워 있었다. 얼마 전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유럽의 이렇게 오래된 고대 도시들은 대부분 그 보존 상태가 아주 우수했다. 도심 골목의 레스토랑이나 상가들은 간판을 크게 걸지 못하고, 어떤 곳은 아예 이곳이 어떤 물건을 파는 가게 인지도 알 수없을 만큼 예전의 건축물 상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몇 백 년이 지나도록 도로에 꼽혀있는 반들반들한 돌들은 아직 그대로의 길을 유지하고 있으며,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약간의 불편함 정도는 그대로 감수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을 훌륭하게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건 부럽다는 감정을 넘어 나에게 자책과 반성을 안겨주었다. 우리도 우리만의 전통적인 옛 모습들을 이런 식으로 훌륭하게 보존하고 가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내가 살던 음흉하고 칙칙한 도시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익과 편리는 감출 수 없는 양날의 검이다. 조금의 불편도, 조금의 불이익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억센 고집은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네 상처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에서 투기, 불법이 판을 치고 그것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숨 막히는 도시의 복잡하고 난해한 사인(Sign)은 그것을 반증하는 무력한 상징들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캄포 광장에 드러누워 떠올려 보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가는 법
실제로 시에나를 구석구석 돌아다녀 보면 이 도시는 문명이 진보한 만큼의 그 어떤 것도 반영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시쳇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시를 그냥 내버려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가능할까? 이 도시는 나에게 말한다. 자신들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가려내고 그것으로 인해 어지러워지는 삶의 주변을 건져내고 있다고. 그렇게 얻어낸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의 화두는 유럽의 오래된 도심 골목에서 나에게 잔잔한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것의 결론은 간단했다. 도시를 더 이상 뭔가로 치장하지 않는 것. 어지럽게 뭔가를 달지 않아도 되는 것. 길거리에서 뭔가를 점유하고 팔지 않아도 되는 것. 필립 들레름의 에세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서 등장하는 16살 소년의 숙제 없이 빈둥거리는 즐거운 하루. 나에게 시에나는 딱 그것이었다.
그렇게 유치 찬란한 생활철학 코스프레를 하며 스스로 유유자적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에서 긴급 비상신호가 울렸다. 아침에 먹은 우유와 빵이 뱃속에서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사르르 하고 아파오는 아랫배에 시에나의 멋진 광장이 순간 흑 빛으로 변한다.
“아... 아... 이거 어쩌지.. 큰일 났다”
이미 일행과도 멀리 떨어진 지 오래.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주머니에는 그 날 따라 비상금도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시의 외곽에 세워둔 캠핑카까지 달려가기는 더욱 난감한 상황. 여행을 하는 동안 가끔 우유 때문에 고생을 한 경험이 있는데도 오늘은 그런 기우를 무시하고 그냥 나온 것이 후회막심해졌다. 이제 노상에서 큰 일을 치르기 일보직전이 된 셈. 할 수 없이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을 찾아가 손짓 발짓하며 하소연을 해보았지만 레스토랑을 이용해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싸늘한 메아리만이 돌아온다.
그렇지만 그렇게 토일렛을 구걸하는 내가 한편으론 불쌍했는지 한 가게 주인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부들부들 떨리던 직장근이 오싹하며 항문을 조이고 그 바람에 내장까지 쪼그라들어 걸음걸이가 실행되지 않을 정도로 비상사태에 직면한 나에게 그 손가락은 '그래, 거기가 바로 공중화장실이야!'라는 엄연한 신의 계시였다. 쏟아질듯한 뜨거운 전북 죽을 요람에 담아 올림픽 신기록 수준의 경보 자세로 힘들게 이동해 기어이 성당 건너편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찾아가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아뿔싸! 여긴 유료다. (CB, CB, CB, CB, CB, CB) 입에서 연신 욕이 터져 나오는데 주머니에선 단돈 1유로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1559년 카를 5세의 허락 아래 메디치가의 코지모 1세가 군대를 이끌고 느닷없이 나타나 이 성을 포위했을 때의 위압감을 나는 지금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신력 하나로 도시를 지키고자 버티다가 막판에 다리가 후덜거려 싸기 직전인 불쌍한 중세 병사의 딱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하늘이 노랗게 물들면서 천사 가브리엘이 성인용 기저귀를 들고 나타나는 환영까지 보이던 찰나. 누군가 나에게 1유로를 건네주었다. 그 주인공은 공중화장실 주변에서 하수로 공사를 하고 있던 시에나의 인부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나에게 건네준 1유로는 불쌍한 피조물을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신 그분의 손길과도 같았다. 그날 시에나에서 난 1유로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캠핑카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외출할 때는 카메라 같은 필수적인 휴대품 외엔 잘 챙기지 않았던 버릇이 큰 화근이었다. 다행히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공사인부들 덕분에 최악의 비상사태는 막을 수 있었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도 참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우유를 마시는 게 겁이나 커피로 대신하긴 했지만, 지금도 그 긴박한 사태를 알아채고 나에게 1유로를 선뜻 건네 준 시에나의 그 공사현장 멋쟁이 친구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폭풍 같은 산책을 마치고 다시 캠핑카로 돌아오며 나는 시에나라는 도시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포스러운 경험(?)이 서로 맞 고스톱 치듯이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무한 반복하는 감정적 장애를 경험하고 있었다. 몰랐던 것을 제 눈으로 직접 체득하고 경험하는 여행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의 발견이다. 하지만 그런 여행을 원할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하드웨어적 절차와 디테일한 배려다. 난 패키지가 싫어서 캠핑카 여행을 택했으면서도 우리의 여행일정이나 투어의 본질은 패키지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캠핑카를 위한 여행의 본질은 무시하고 다녔던 것이다. 하루에 677km를 달리는 것은 캠핑카 여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태였으며, 차를 믿고 모든 준비물을 캠핑카에 놓고 주마간산으로 여행지를 돌아보는 행태는 패키지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 조금은 이 여행의 패턴과 마음가짐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 날 오후 시에나를 떠나 로마 공항에서 한국에서 날아온 또 다른 일행을 맞이했다. 비상금을 든든하게 챙긴 새로운 팀과 잠시 합류한 우리는 로마의 살인적인 물가를 걱정하면서도 오랜만에 오토캠핑장에 차를 대고 고기와 와인으로 호사스러운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당연히 시에나의 캄포 광장과 두오모 그리고 그 자글거리던 골목길과 공중화장실 에피소드가 주 안주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짐한다. 역시 캠핑카는 캠핑장에 있을 때가 가장 멋지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Damotori's travel notes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 풍경
언젠가 잠깐 노을 진 하늘을 만났었다. 그때 이유 없이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현실이 싫어서 도피하는 것도 아닌, 자아에 매몰되는 뻘짓 거리도 아닌, 그냥 순수한 떠남에 대한 설레임이었다. 그래, 내게 아직 그런 생각이 남아있다는 건 철이 안 들었거나, 아직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거나 둘 중 한가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