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 (Interlaken)
2003년 11월 30일 10시 30분
우리집 캠핑카는 그동안 지루하면서도 정이 들었던 독일을 벗어나 드디어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랴, 이랴~먹고 자고 일어나면 주저없이 달리고. 주마간산 최적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캠핑카! 이 녀석은 역시 주인의 말을 잘 알아듣는 천리마였다. 물론 값비싼 고급 가솔린을 먹는 징그런 녀석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역할을 100% 이상 훌륭하게 소화해주는 효자다. 그러니 자식, 볼수록 맘에 들 수밖에.
그렇게 캠핑카를 천리마 삼아 독려하며 주구장창 내달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는다. 스위스로 오는데 유럽에서 처음으로 국경검사가 있었다. 모든 유럽을 프리패스로 다니다가 국경 심사대에 사람들이 왁자한 것을 보니 순간 느낌이 묘하다. (물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 스위스는 유로(EU)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국경에서 간단한 운전면허 검사를 하는데 여권과 면허증을 보여주자 간단하게 무사통과. 하긴 뭐 조사랄 것도 없었다. 돈 쓰러 오겠다는 관광객을 말릴 이유가 없는 나라가 바로 관광대국 스위스니까.
또 하나. 스위스는 그때까지 환율 문제로 인한 스위스 내부 사정이라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그 불편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아 유로화가 대부분 그대로 통용되고 있었다. 물론 거스름 돈은 스위스 프랑으로 주니까 그곳에서 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짜증스러움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긴장했다. 유로화를 기본 통화수단으로 가지고 다니던 우리는 스위스에서 쓸 만큼의 돈만을 환전하고 나머지를 남기지 않고 떠나야 했다. 그거 가져가 봐야 유럽 어디에서도 써먹을 데가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스위스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 처음 여행 때는 말도 안되는 짜증 지대로의 패키지여행이었기 때문에 루체른 호수에서는 이도 저도 가보지 못하고 죽을 쑤고 앉아 있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먹고 잘 수 있는 캠핑카가 있으니 가고 싶은 데로 가면 그만이다. 친구가 운전하고 내가 내비게이션을 했다. 나는 들머리를 잡으며 관광지 말고 그냥 사람들이 사는 스위스의 시골 풍경은 과연 어떨까? 그게 궁금해졌다. 궁금하면 가보면 되지. 그래, 그냥 막 가보자고. 뭣이 문제인가?
그래서 스위스의 조그만 국도인 시골길을 달려서 하염없이 가봤다. ST. Gallen - Winterthur - Dubendorf - Uster - Wetzikon - Hinwil - Ruti까지. 이 수많은 조그만 동네들을 지나서 늦은 밤, 취리히 호변이 길게 늘어진 아랫동네 라파스 빌에 도착한다. 이곳을 지나오면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모든 마을이 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높게 우거진 눈 덮인 산맥과 길게 반짝이는 강가로 이어진 아름다운 마을과 집들은 누구나 한번 쯤 새 달력을 보며 느꼈을 그런 부럽고 이국적인 풍경이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기저기 말린 북어처럼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그렇게 주어 담기에도 힘든 풍경들은 우리 같은 촌놈들을 심하게 압박했다.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냐. 미니어처도 아니고 ㅠ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삶일까? 라파스 빌 다리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딱지를 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 불을 켠다. 그리고 떠나온 나의 삶의 터인 서울을 생각한다. 서울은 지금 웰빙 천지다. (15년 전이니 오가닉이 유행하기 전이다). 누구나 다 건강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또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웰빙이 텔레비전에, 인터넷에 난리가 아니게 퍼지고 있다.(당시 모바일은 초기단계여서 커뮤니티와 쇼핑은 인터넷이 대세였다) 지금 웰빙을 안 하면 꼭 무슨 깡촌에서 올라온 무지렁이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정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걸까?
약속 시간 지키기와 건강을 위해 만보 걷기를 권유하는 지하철을 타면 폐암으로 죽을 확률이 지상으로 다닐 때 보다 몇 배가 높다고 한다. 그뿐인가? 다이옥신이 득실 거리는 도심 아파트 단지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웰빙을 한답시고 깝죽대면서 설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뭐가 잘 살고 부유하고 건강하게 사는 건지를 알 수가 없다. 헷갈린다.
이곳 사람들은 집에 TV도 없고 인터넷은 되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들다. 자신의 팔 한 길보다 긴 지붕을 가진 차도 보기 힘들다. 전부 딱정벌레다. 게다가 대부분 자전거로 움직이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사람들과의 대화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보가 없다고 불편한 삶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건 대단한 모순이 아닌가. 우리는 바로 10년 전까지만해도 차에 두꺼운 지도를 넣고 다녔으며, 친구와 약속을 하면 틀림없이 시간에 맞춰 그 장소에 있어야만 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편의라는 말로 이 모든 것들은 다 지워지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이다 보니 라파스 빌의 다리가 아름답게 빛나고 저 멀리서 새벽이 움터오고 있다.
그날 오후에는 취리히를 들렸다. 세계 금융산업의 본산지인 유럽의 중심도시. 상당히 보수적인 동네란다. 드넓은 호숫가에는 시민들이 저녁 석양을 즐기며 갈매기와 거위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다. 도심 속으로는 노면전철 트램(Tram)이 시민들을 싣고 지나가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취리히 중앙역 앞에 있는 무인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우고 도심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서 돌았다.
물론 취리히에는 아름다운 산책길인 취리히 호수 외에도 스위스 국립박물관, 그로스뮌스터, 프라우뮌스터, 성 피터 교회, 쿤스트하우스 같은 관광명소가 있지만 패키지여행에서 이미 허겁지겁 경험한 관광지 견학을 포기한 우리에게는 그저 시내의 자유로운 도심 풍경이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산책하듯 걸아간 린덴 호프(Lindenhof) 언덕에서 취리히 구시가를 내려다 본다. 역시 아름답구나.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즐비한 우리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도심 풍경이다.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리마트 강가에는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강가에 늘어선 레스토랑에는 신문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 샐러리맨들로 가득하다. 몇 분만 걸어 봐도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 가는 금세 알 수 있다.
취리히 호수 공원에 버티고 있는 장 팅겔리 (Jean Tinguely)의 작품 호이레카(Heureka)를 뒤로 하고 우리집 캠핑카는 인터라켄으로 접어든다.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 역시 보이는 경치가 전설 속의 그림 같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랬다고 아무리 맛난 음식도 365일 먹으면 질리는 법. 가장 좋을 때 그 장면의 기분을 간직하기 위해선 너무 많이 바라보는 것도 좋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끔찍하게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하면 그냥 낮잠을 잤다. 이후 캠핑카는 Brienz - Oberried - Niederried -Ringgenberg -Lauterbrunnen을 거침없이 달렸다. 해가 떨어져 어두컴컴한 시간에 도착한 곳은 인터라켄에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산 동네 스테첼베르크(Stechelberg)였다.
이곳은 무려 해발 867미터다. 이곳에서 1,367미터의 봉우리 김멜발트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운이 좋으면 절벽을 뛰어 올라가는 아이벡스(알프스 야생 염소)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근데, 그거 보면 뭐하냐 --;) 또 하나, 인터라켄에 오면 꼭 들려야 한다는 융프라우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우린 거기에 오를 돈이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무지하게 유명한 이 융프라우의 입장권은 무려 일인당 12만 원이다(15년 전 가격, 지금은 더 비싸졌을 테지 --;). 그래서 우린 산꼭대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인터라켄 캠핑장에 차를 대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뮌헨에서 건져온 독일 맥주를 들이켰다.
“Augustiner Breau Munchen Edelstoff "
그날 밤.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서 느끼는 겨울 인터라켄의 달빛이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캠핑카에다가 늘어지는 하우스 음악을 걸어 놓고 밖에 의자를 내고 드러누워 다 함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켠다. 휘황찬란한 달밤, 난 지금 스위스 어느 깊은 계곡 속에 들어와 있다. 아, 이렇게 좋을수가...
언제나 바쁜 사람들과 촌각을 다투며 살아오다가 갑자기 혼자가 된 듯한 느낌. 스위스 산골여행은 그런 느낌들을 싫지 않게 전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좀 천천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스위스 계곡에서 이런 술 한 잔에 하우스 재즈 음악을 듣는 것도 참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반딧불 꽁지 같던 달이 붉게 차 올라 꾸역꾸역 내 눈 속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참 달게 잔 하룻밤이었다. 그 날 꿈속에서 본 풍경들은 낯설지만 반가운 나의 미래였다. 평소 좋아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명저 '월든'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내가 낚시하는 강의 흐르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강물을 마신다. 그러나 물을 마실 때 모래 바닥을 보고 이 강이 얼마나 얕은 가를 깨닫는다. 시간의 얕은 물은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은 물을 들이켜고 싶다.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린 하늘의 강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
-월든(Walden),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Damotori's travel notes
취리히을 떠나며....
이국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빛을 잃어 사라질 무렵. 난 문득 여행에서 다가오는 쓸쓸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꼈다. 보이는 것을 대하는 여행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마주하는 여행을 비로소 본 것이다. 그것은 - 그게 뭐라고 설명해봐야 다 부질없는 - 마치 무상무념에 가까운 번뜩이는 깨달음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