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Munich) 나무네 집
어라? 저건 또 뭐냐?
체코를 떠나 뮌헨으로 가는 차 유리창 아래 못 보던 작은 인형이 놓여있다. 생긴 게 무슨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척키 같아 스멀스멀 소름이 돋는다.
“저건 뭔데?”
“응, '나무' 주려고 베를린 벼룩시장에서 샀지. 저거 목에 줄을 확 당겼다 놓으면 목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얼마나 이쁜데... 흐흐 ”
기절하겠다. 소름이 쫙 끼치는 저 인형이 귀엽다니. 친구 녀석은 운전을 하면서도 인형을 쓰윽 보곤 ‘그 녀석 겁나 귀엽네’ 하면서 한마디 던진다. 난 인형을 들어 목 뒤에 있는 줄을 당겼다 획 놓아본다. 그러자 띵글 땡글 하며 목이 돌아가더니 비장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에이, 아무래도 을씨년스럽다. 난 이 인형에게 척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친구야, 이거 나무가 좋아할까? ”
“인마, 당근 빠따지”
근데 나무가 누구냐면? 나무는 뮌헨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후배 석이의 딸 이름이다. 우리는 체코를 벗어나 독일에서의 마지막 여정으로 여행 중 숨도 좀 돌릴 겸, 뮌헨에서 학위 공부하고 있는 석이를 찾아가기로 했다. 석이는 학교 다닐 때 낡고 후줄근한 검은색 반코트를 늘상 입고 다녔는데 녀석이 입으면 긴 코트로 둔갑해 그 이미지가 트레이드 마크가 된 마치 모모 같은 후배 녀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년이 된 ^^) 대학 4학년을 마치고 뒤늦게 홀홀 단신 빈손으로 독일로 유학을 가더니 이젠 그럴듯한 작가로 변신한 자수성가의 화신이었다. 물론 그 사이 같은 학교를 다니던 독일 여자 친구랑 결혼해 예쁜 딸까지 낳았으니 그 아이가 바로 '나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후 뮌헨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 앞에서 후배 석이를 만났다. 역시 그 반코트를 입고 있다. 징그러운 녀석. 난리법석을 떨며 반가운 세리머니를 몇 차례 하고 기숙사 아파트를 따라나선다. 가는 도중 반가운 마음에 남자들의 수다가 끝이 없다. 독일은 연방제로 각 도시들이나 주가 나라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특히나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에서도 보수적 색채가 강해 엄격한 법 적용으로 유명해서 자전거 음주에라도 걸리면 벌금이 무려 1,000유로나 될 정도로 초강력 울트라 금전적 손실을 봐야 한다니 정말 말 다했다. 근데 얼마 전 그 벌금을 후배가 당했단다. 그러더니 띠벌띠벌 입이 오리 입처럼 한 무더기 튀어나온다.
사실 이런 강력한 벌금은 같은 독일 내 쾰른이나 베를린에 사는 독일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금액이라고 한번 더 투덜댄다. 바이에른은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서 후배 녀석은 벌써 5년이 넘게 이 곳에서 독일인 와이프와 함께 살고 있지만 바이에른 주를 드나들 때마다 검문검색에 걸린다고 푸념했다. 심지어 전신 검문에 자동차도 죄다 수색을 당한다고 불평이 장난 아니다. 우리 캠핑카도 주차 한 번 까딱 잘못했다간 큰 코 다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유럽에서 센 벌금 몇 개 맞으면 여행 자체가 휘청거릴 정도로 경제적 타격이 심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난 함께 후배 집으로 가서 석이의 아내 니꼴을 만나고 또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예쁜 딸 나무를 만났다. 나무는 친구가 베를린 벼룩시장에서 산 척순이를 건네주자 무척 좋아하며 신기해한다.
“음, 다행이군. 난 무섭던데... ^^”
그렇게 가까이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나무를 직접 보니 힘들게 이곳에 정착한 후배 석이의 고생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니꼴이 우리 일행을 위해 늦은 점심을 차려주는 사이 지나간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아이가 있어 정부 보조금이 나오지만 기숙사도 없고 혼자 살 때는 동네에서 나무를 주어와 난로를 때며 살만큼 어려운 시절도 겪었다고 지난 추억을 이야기한다. 추억이 추억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이었겠다 싶다.
“그러게, 니도 참 고생이 많았구나. 타향에서 왜 아니겠냐.”
선후배의 만남은 그렇게 삶의 얘기로 시작되었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곧바로 유치 뽕~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우리는 후배 집에다 캠핑 보따리들을 다 내려놓고 뮌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호프 브로이 맥주집으로 향한다. 이곳은 옥토버 페스터 기간에는 가게 집 뒤뜰을 터서 온 정원에 사람들이 가득하기로 유명한 그 호프집이다. 학꼬방 같은 우리 동네 생맥주 집에 걸려있는 낡은 포스터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집. 특이한 것은 일행들끼리 앉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이 마구 뒤섞여 왁자지껄하게 맥주를 마셔야 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일행들과 섞여 앉게 된 여행객들은 나이 지긋한 스위스 부부 몇 쌍이었는데 결혼 35년째 기념일을 독일 여행으로 보내고 있단다. 나이 들어 부부끼리 결혼 기념 여행을 다니는 그들의 여유가 한동안 부러웠다. 술이 얼큰하게 들어가자 또 한 번 지난 추억들과 독일 생활에 대한 애환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고 그 때문에 술자리는 계속 이어진다. 후배는 이렇게 친구들끼리 캠핑카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를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한술 더 떠서 결혼을 한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떠나 여행하는 것을 보고는 짐짓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다. 당연히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암!
우리는 모처럼 후배 집에서 나무와 놀면서 며칠을 푹 쉬었다. 원고를 정리하기도 하고 밀린 빨래를 하기도 하고 벼룩시장엘 나가 선물을 사기도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후배의 기숙사 앞에 바로 뮌헨의 잉글리시 가든(English Garden), 일명 엘리자베스 정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 정원을 걷고 있노라면 도시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가에 대한 정답을 얻게 된다. 나무네 집에 묵으면서 나는 진짜 나무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당연 그래야지! 암, 자연과 함께 그렇게 있어야지!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나 멋진가? 이 커다란 공원을 앞마당으로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이 말이다.
떠나기 전 날. 우리는 짐을 싸면서 캠핑카에서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후배가 오늘은 자기 집에서 함께 자라고 부추긴다. 그 날은 마침 니꼴이 약속이 있어서 밤늦게나 들어온다고 하면서. 우린 뮌헨의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그러마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후배 녀석이 찬장 깊숙한 곳에서 보물단지처럼 싸여 있는 작은 술병을 하나 내왔다. 그건 이태리 산 와인이었는데 1997년 산으로 구하기 힘든 바를로 빈티지였다. 형들을 위해 준비했다던 와인을 따고 우리는 마지막 이별을 아쉬워하며 깊은 맛의 레드 와인에 흠뻑 취해갔다. 그러는 사이. 밤늦어서야 니꼴이 집에 돌아왔다.
'너희들 지금 뭔 짓을 한 거니?'
그런데 일은 그때 터지고 말았다. 니꼴이 들어와 자리에 합류하면서 거의 다 비어 버린 와인 병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오 마이 갓’을 연발한다.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어쩔 줄 몰라서 우린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다. 그때 석이가 털어놓은 말을 듣고 우린 갑자기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았다. 얘기인즉슨, 우리가 방금 홀라당 빨아먹은 와인은 후배가 니꼴과 함께 몇 년 전 결혼기념일에 몇 년을 모은 경비로 처음 스위스로 여행 가서 비싸게 사 왔던 와인이었다. 그런 고로 특별한 결혼기념일 날 마시기로 약속했다는 와인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이를 어쩌냐. 초나라의 피리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돈 없고 가난할 때 서로 만나 변변한 여행도 못하고 힘들게 살다가 처음 가는 결혼기념일 여행길에서 구입한 와인은 거기서 맥없이 마시기에는 두 부부에게 너무 고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가지고 와서 특별한 결혼기념일에 함께 따기로 한 것을 우리랑 홀랑 마셔버렸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우린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냐고 추궁했지만 시이저는 벌써 루비콘 강을 넘어가 가죽신의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물 건너 간 상황.
그때서야 독일 애들 무서운 것을 처음 경험했다. 니꼴은 우리가 있는데도 무지막지하게 후배는 물론 나중에는 우리에게도 따져 들었다. 그러자 우리의 후배 석이가 갑자기 조용히 일어나서 다시 한번 찬장을 뒤진다. 그러자 거기에서 또 한 병의 와인이 나온다. 얼라리, 저건 또 뭐야. 똑같은 와인이 한 병 더 있네? 그러면서 니꼴에게 보여주며 실은 이게 그 와인이라고 설명하자 니꼴은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화가 풀렸다. 그제야 후배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형, 내가 그때 이거 두 병 사 왔거든. 니꼴은 한 병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냥 내가 두 병 샀어. 다시 그 스위스로 여행 가기도 힘들 것 같고 그다음 해에 또 이 와인을 마실 수 없을지도 모르고 내 처지가 그렇잖아. 그래서 확 질러 버렸지 뭐. 근데, 형들 보니까 갑자기 따고 싶더라고, 하하"
당시 니꼴은 후배의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완벽하게 한국 말을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린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형들이라고 후배 신세만 지고 놀러 다닐 궁리만 하고 있었으니. 갑자기 미안할 수밖에. 다음날 오석이는 우리가 떠날 때 그렇게 만류하는데도 우리 차에 맥주 한 박스를 실어주었다. 게다가 마지막 이별 악수를 하는 친구의 손에 50유로가 든 돈 봉투를 건넨다. 친구가 난리를 치자 봉투는 물렸지만 맥주는 어쩔 수 없이 받아 넣어야만 했다. 나는 석이의 손에 오랫동안 쓰던 작은 지포 라이터를 건넸다. 캠핑카 뒤로 점점 작아지는 후배는 그렇게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친구의 눈에서 작은 물방울인가 싶은 것이 하나 맺혔다.
“인마, 나무 예쁘게 키우고 정말 잘 살아야 된다. 언제든 다시 찾아오마”
하지만 15년이 흘러갔어도 다신 뮌헨의 나무네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때론 그게 인생인 거지..
Damotori's travel notes
전혀 다른 밤....
16세기 혹은 그 이전. 어떤 사람들이 깎아내고 다듬어 만들어 놓은 길 위를 걷고 있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다. 그들이 뱉은 숨소리들. 그리고 전쟁들, 계급들,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복종들. 하지만 그 격랑의 역사를 작은 골목은 조용한 풍경으로만 보여준다. 나는 숨이 막히고 그 전율을 이기지 못해 앉을자리를 찾는다. 그게 바로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