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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Nov 04. 2018

변하지 않는 것들의 모둠 한 사발

충무로 <필동해물>

칙칙한 아날로그의 추억     


충무로 골목길에는 언제부턴가 필름 현상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자신이 찍은 컷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그래서 현상을 한 후에야 비로소 사진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시대가 전성기를 지난 것이다. 하기사 상업사진을 하는 작가들에겐 디지털이란 편리한 시스템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다가왔을 것이며, 취미로 사진을 하는 이들에게도 필름을 소비하지 않고 바로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높은 화소수의 디지털카메라 보급은 맨땅에서 말 타다가 아우토반에서 페라리를 모는 듯한 가성비와 보람을 안겨주었을 터.      


그런데 이런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은 골목길을 전전하며 아날로그 카메라에 심취해 있던 나 같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겐 바울의 복음서는커녕 사진 찍기의 보람을 앗아가는 날강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어떤 시간이었다.      



필름이 대세이던 당시 나의 주력 카메라는 구식 라이카 바르낙(Leica IId+50mm Elmar) 카메라였는데, 여기에 필름 한 롤을 넣고 동네 한 바퀴를 흐느적흐느적 돌다 보면 하루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곤 했다. 그러면 해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충무로에 곧장 달려가 '월포'나 '포토피아' 아니면 'R3'나 '포토랜드'에 필름을 맡기고 나면, 조물주도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시간을 맞닥뜨려야만 했다. 필름 현상을 기다려야 하는 2시간가량의 대기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는 너무나도 즐겁게 장비병 환우들과 어울려 혹은 혼자라도 꼭 낮술을 먹었다. 당시에는 커머셜이든 취미든 모두가 필름이 대세여서 대기시간이 적잖이 길었다. 너무나도 기다리던 소중한 시간. 옛말에 김유신의 말은 주인이 잠든 사이에 종종걸음으로 단골 요정집에 달려갔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말도 안 타고 내 발걸음 스스로 나만의 숨겨진 요정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 요정집이란 다름 아닌 당시 을지로나 충무로 무대에 만연하게 널려있던 낮술 집들이다. 만선호프, 영락골뱅이, 조선옥, 을지면옥, 동원집 등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필동해물이다.        


간장과 와사비가 없는 이상한 해물포차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카메라 선배들 때문이었다. 사진가 선배가 아닌 굳이 카메라 선배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들이 진짜 심각한 장비병 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양반들에게 사진은 구실이고, 사실은 카메라 장비에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그 자랑질의 암묵적 카르텔 공간이 바로 여기 <필동해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카메라를 배웠다. 알딸딸하게 술을 마시고 선배들이 늘어놓는 전설 속의 카메라 얘기에 심취하다 보면 하루해가 지는 것조차 아까웠다. 물론 대화의 거의 반 이상이 개구라에 폭풍 허세들이었지만.



<필동해물>. 여기는 사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점이다. 비좁은 공간은 그렇다 치고, 그 흔한 수족관과 그물망 하나 없으며, 바로바로 현지에서 공수되는지가 의문스러운 냉동 해물이 메뉴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주점이 낮술의 성지로 사랑받는 이유가 딱 하나 있다. 변하지 않는 태도. 바로 그것이다. 태도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지 술꾼들은 다 안다.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는가? 대학시절 뻔질나게 토론하던 개똥철학 시간에도 '사물은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어제의 그것이 아니고 오늘 역시 내일의 그것이 아니라'는 대명제에 끄덕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그 추억. 하지만 우주의 역리가 이곳에서만큼은 절대 안 통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나를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 좋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는 중용의 낮술 집. 필름 카메라 건 디지털카메라 건 어떤 시스템이든지 모두 포용하는 말도 안 되는 저 기개. 10년 전부터 간장과 와사비를 달라고 꾸준하게 요구했음에도 시크하게 무시하는 주인장 아저씨의 뚝심. 의자가 부서질 정도가 되어서야 하나씩 바꿔놓아서 결국 손님 4명을 모두 각기 다른 디자인의 의자에 앉히고야 마는 저 괴팍한 아집을 서울 바닥에서 도무지 당해낼 주점은 없다.

      

필동해물 주인장 아저씨


그래, 이 집에서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만점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반백이 된 나이에 여기를 찾아가서 30대의 나를 마주 본다는 것은 주점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이다. 그것도 햇살 찬란한 낮술을 마시면서 타임머신을 타는 느낌으로 행복감에 젖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쾌락은 아니다. 주어진 자에게만 선사되는 보람찬 선물인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절대 맛있지 않다     

보람찬 행복이니, 주어진 자의 선물이니 하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니 마치 이 집이 천하일미 집으로 보일까 봐 두렵다. 먼저 이참에 내가 좋아하는 낮술 집은 맛이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내 입맛의 비밀은 공간감과 메뉴의 비주얼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효과에 근거한다. 그다음이 미각이다. 밥집과 술집의 근본적인 차이는 맛의 중요도보다 누군가와 무엇을 떠들 수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공간감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곳도 처음엔 '인생 멍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멍게 맛 하나는 끝내줬다. 하지만 지금은 옛말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신 안 가! 쪼잔하게 이러진 않는다. 그 이유는 필동해물이 밀어붙이고 있는 변치 않는 공간감과 밀도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답답하지 않다. 엄청나게 시끄러운데 아무도 시비 걸고 싸우는 사람이 없다. 메뉴판에 이것저것 많은 메뉴들이 거의 다 안 되는 것들로 도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둠 해물의 경우 그럭저럭 각 1병씩 비우는데 그다지 큰 문제가 없다.

           


언제부터인지 주인아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몸이 편찮으시다고 한다. 푸짐하게 해물을 그득하게 얹어주는 아주머니가 없어서인지 모둠도 양이 대폭 줄었다. 불변의 홍합탕 그리고 간장과 와사비를 개무시하게 만든 시그니처 초장은 여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만 굴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대친 굴을 넣는 건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아찔하고 짱짱했던 아날로그의 맛은 사라지고 차가운 메모리카드에 담긴 퍼석한 식감의 해물들이 가끔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난 여기 <필동해물>을 여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곳에 가서 낮술을 한 잔 하기에는 아직 이곳이 나에겐 뭔가 로망과 기대 그리고 개구라와 쓸데없는 욕심이 마구 버무려진 해물 모둠의 성찬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기서 아는 선배와 술 한 잔을 마시는데, 그 선배가 기어이 옆집까지 다녀오며 간장과 와사비를 얻어온 것을 보고 내가 한마디 했다.

      

“형은 참 영혼이 구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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