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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Nov 02. 2018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다

<화계사 옛고을 손두부>

두부


나는 지금까지 두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좀 어처구니없지만, 난 두부를 그냥 그저 그런 반찬 중 하나로 여기면서 살았다. 일본에서 두부는 자연의 맛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적 조그만 어촌에서 자랐던 나에게 두부는 그저 단백질을 보충하는 일상적인 부재료였을 뿐이다. 그보다는 조그만 만화방에서 양은냄비에 꼬챙이로 가득 엮여 달착지근한 내음을 풍기던 하나에 10원짜리 오뎅 꼬치나 소금과 무우만을 넣어 끓인 생태국이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다지 두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두부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이 식당때문이다. 그것도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의 종류로 좋아한 것이 아니라 번듯한 술안주로 나는 이 집 두부를 만났다. 사실 전국에 맛난 두부집은 천지에 널려있다. 그 많은 두부집을 제쳐두고 이 식당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 동네라는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를 대라면 바로 이 집 두부가 밥을 부르지 않고, 단지 술을 부른다는 이유에 있다. 술꾼답게.

 


그런데 의외의 함정은 이 두부집이 언제 문을 열고 닫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단골로 찾고 있지만 몇 번을 빼고는 가게 문을 열고 자신 있게 들어간 적이 별로 없었다. 1년 중 거의 절반은 문이 닫혀있다. 아주머니의 전화번호를 어렵사리 따내고 연락을 해보지만 절대 받지 않는다. 언젠가는 왜 자꾸 전화를 하느냐고 핀잔을 받기까지 했다. 그럴 땐 그야말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여기 장사하는 식당 맞아?     


내가 본격적으로 <낮술집>을 써보기로 하고 거의 1년을 머뭇거린 이유는 낮술 집이라는게 운치만큼 그다지 맛있는 메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식당 중 술 한 잔이 어울리는 대부분의 주점은 저녁에 오픈하는 가게가 많다. 물론 낮에도 소주나 맥주 한 잔 정도 기울일 노포나 점포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저녁의 풍미만은 못한 게 사실이다. '밤술은 고통의 술이고, 낮술은 희망찬 술'이라고 버럭버럭 우겨도 맛있는 안주는 죄다 저녁 풍경에 등장한다.


물론 대한민국에는 낮술의 천국, 재래시장이 있다. 하지만 시장 통의 낮술은 사실 희망찬 술집이라기보다 밤보다 더 침울한 풍경이 다반사여서 흥겹게 자주 찾기는 힘들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식당은 나에게 별빛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별빛은 뿌연 서울하늘 아래에서는 자주 볼 수 없다는 커다란 약점을 지닌다. 화계사 <옛고을 손두부> 집의 주인아주머니가 바로 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별을 봐야 뭘 따든가 할텐데, 주인장 아주머니를 여간해선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때로는 운 좋게 호사로이 입성하는 날도 있다. 주말 등산객들이 오후 늦게 화계사 길을 따라 북한산을 내려올 즈음, 아주머니는 열일 제치고 가게 문을 연다. 대목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요때 찾아가면 십중팔구는 오픈되어 있다.


이 두부집만의 묘한 포지션과 상징


<옛고을 손두부>가게는 미묘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불교 사찰인 화계사와 개신교인 한신대학원의 딱 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두부가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의 덕이다. 그러니 두부집이 사찰 앞에 있는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전국의 유명한 산 아래 식당 중에 유독 두부집이 많은 이유도 사찰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두부는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때 억불정책으로 조금 냉랭해 졌다고는 하나 제사음식으로 두부는 살아 남았다. 조선시대에는 두부를 만드는 사찰인 ‘조포사’를 지정해 두부와 제수음식을 바치도록 했는데, 세조의 능인 광릉의 봉선사는 두부제조로 유명한 조포사였다. 그리고 이 곳 화계사의 두부소박이는 우리나라 템플스테이 식단의 가장 유명한 레시피중 하나다.


식당은 화계사 정문 앞에서 한신대학원 운동장을 끼고 내려오다 오른편에 조그만 간판을 걸고 허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닫이 문짝은 촌스러운 시골 슈퍼마켓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 얼핏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뭐, 그냥 지나친다고 어떤 이의 눈썰미를 탓할 수준이 아닌 너무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네 식당임으로.



가게 문 앞에 널려진 3천 원짜리 테이크아웃 청국장을 비껴서 안으로 들어가면 문 앞으로 오래된 좌식테이블 3개가 놓여있고 안으로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구들장 좌석이 2열로 길게 늘어서 있는 구조다. 그리고 주방은 오른편 안쪽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방안의 벽 한가운데에 추사의 세한도가 떡하니 걸려있다. 아! 세한도. 이 무슨 고상한 도발일까? 문득 생각해보다가 추사의 글씨 대팽두부(大烹豆腐)가 떠올랐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 손녀.      


아! 그래, 추사선생은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 된다고. 이를 시크하게 완역하면 천하제일의 반찬은 두부랬다, 두부! 이제사 세한도가 걸려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식당 안에 들어서며 느끼는 첫 번째 존재감은 두부가 아니다. 청국장이다. 두부가 이 집의 메인 요리이지만 서브로 등장하는 청국장 쌈밥이 묘한 정체성의 싸움을 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두부가 가장 맛있는 집에서 두부의 지짐 내음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식탁에 앉아 일단 걸쭉한 농주를 시킨 다음 찬찬히 메뉴를 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부구이. 그리고 두부조림. 그 다음이 두부전골이다. 당연하게도 모든 두부가 맛있다. 그리고 모든 두부가 다 반찬이기를 포기하고 나는 안주라고 떠들어댄다.

     


내가 이 집에서 낮술을 즐기며 가장 선호하는 메뉴는 당연히 두부구이다. 두부의 가장 즉물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집 두부는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다. 배합은 모른다. 물어본 적도 없다. 당연히 레시피도 모른다. 난 그저 타고 난 내 입맛만 느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두부구이를 어디에서도 맛본 적이 없다. 숱한 시장, 뻔질난 출장, 그리고 하찮은 여행길에서도 이런 두부구이를 맛본 적이 없다.


물론 비슷한 예를 들라면, 춘천의 지암리 신숭겸 묘역 근처에 있는 두부집에서 아주 잠깐 이런 두부의 맛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 두부는 두부를 굽는 돼지기름 향이 너무 강해서 두부 고유의 맛을 느끼기에 부담스러운 맛이었다. 물론 내가 전국의 두부 맛집을 모두 다녀보지 않았기에 이런 맛자랑은 허술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가 두부이긴 해도 낮술 집이라는 명제로 볼 때 이 집 두부정도면 자랑삼을 만 하지는 않을까 혼자 우기는 중이다.  

     

동네 친구 혹은 선후배들과 너무나 한가하게 어울려서 중요한 느낌 자체가 사라진 어느 날 오후, 나는 여기서 두부를 놓고 걸쭉한 농주를 들이켠다. 두부구이의 딱딱한 경계를 입으로 깨물어 뜨리면 바로 뜨거운 즙처럼 드러나는 콩물의 존재감. 입안에서 녹듯이 퍼지는 단백질 덩어리의 파편들이 나와 허투른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 속으로 사구체를 빨아들이는 콩팥의 보상처럼 따뜻한 느낌으로 온 몸에 쫙 퍼진다.



두부를 안주삼아 몇 순배나 돌았을까. 해가 떨어지기 전 화계사 건너편에서 들이닥치는 마지막 태양 빛이 남은 두부를 비출 때 나는 행복감에 젖어 낮술에 향연에 그만 푹하고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하교하는 학생들이 두부집을 지나고 마지막으로 화계사 스님들이 줄지어 수유리 방면으로 내려가면 나의 두부 의식은 거기에서 종료를 선언한다. 아, 잘 먹었다~가 아니라 아! 잘 마셨다는 느낌을 온전하게 받았다는 것은 낮술과 두부의 묘한 어울림이 선사하는 일상적 선물이다.      



이 집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두부를 함께 먹었다. 그들은 두부보다는 식당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아주머니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했다. 우리가 거기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대부분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 이야기들이 이 집의 두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두부가 아니라면, 이 두부의 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꾸역꾸역 이곳까지 사람들을 데려와 인생 이야기를 펼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슬퍼런 대낮에 말이지.


나는 언제고 누구와 함께 다시 이 집을 찾을 테지만, 그때도 알맞게 나를 위해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활짝 열어 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낮술이 당길 때 이 집의 전화번호를 먼저 찾게 된다.


"사장님, 오늘 가게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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