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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Dec 26. 2017

서울, 꽁꽁 숨어있는 낮술의 천국

프롤로그

내가 애정하는 서울의 낮술 집     


낮에 마시는 술. 낮술이다. 누구에게는 인생에 있어 어쩌다 한 번쯤 마시는 게 낮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세상엔 널렸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간단하게 맛만 보는 반주를 우린 낮술이라 부르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날이 쓸데없이 쾌청하거나, 비가 슬프도록 주룩주룩 내리거나 혹은 첫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때를 핑계 삼아 진득하게 퍼질러 앉아 대낮부터 호쾌하게 마셔대는 술. 나에겐 이런 것이 바로 낮술이다. 혹자는 실연을 당해서, 사기를 당해서, 누군가와의 생이별을 슬퍼하며, 악마 같은 상사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대낮부터 호기롭게 마시는 그런 술을 낮술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진정한 낮술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낮술은 분명 맛있고 즐거운 만찬이어야 한다. 그것은 은밀하고도 외로운 오락이거니와 아무 하고나 같이 자리할 수 없는 나만의 쾌락이어야 한다. 전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세상에서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시간에 나 혼자 삶의 공간에서 뛰쳐나와 호젓하게 그럴듯한 안주와 더불어 술 한 잔을 넘기는 그 짜릿한 낮술의 즐거움은 일일이 설명하기가 곤궁할 지경이다.



흔히 밤에 마시는 술은 하루의 고단함이 묵직하게 얹어져 있다. 그 술자리는 오늘 내가 버텨낸 하루살이에 대한 위로이자, 때로는 보람의 상징이기도 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약속된 술자리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 술자리는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희로애락이 소주잔에 뚝뚝 떨어진다. 대관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또 어떻게 내일 하루를 이겨내야 하는지를 다짐하고 극복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가만히 있어도 취하는데 술까지 들이 부우니 취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덩달아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에 비해 낮에 마시는 술인 낮술은 자잘한 목적이 없다. 날씨가 좋아서 한 잔, 심심해서 한 잔, 일거리가 없어서 한 잔, 친구가 불러서 한 잔. 나의 낮술은 대부분 노동의 삶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망중한이다. 백수니 한량이니 하는 말 대신 요즘은 더 좋은 말이 있다. 프리랜서다. 일하는 시간을 자기 맘대로 정하고 남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낮술을 한다. 왜냐고? 그건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즐겁게, 조금은 천천히 살고 싶어서다. 밤술은 술을 마시는 대화 상대에 국한된다. 하지만 낮술은 나에게 세상을 관조하게 해준다. 맛있는 안주를 놓고 한 잔씩 넘어가는 술잔에 비치는 나만의 온전한 세상. 거기서 내가 완벽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여유. 뭔가의 그럴듯한 이야기가 없어도 훤히 날 것으로 보이는 세상이 나는 즐겁고 유쾌하다.

      


물론 이 즐거움에는 소박한 전제조건이 따른다. 낮술의 장소가 다소 그럴듯하고 안주는 맛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점은 서울에 다 있다고. 그렇다. 서울에서만큼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애정 하는 낮술 집이 여러 곳 존재한다. 거기에 있는 순간만큼은 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자주 찾고 좋아하는 낮술 집들이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어느 날,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폐 몇 장과 동전 여러 개를 만지작거리며 시내로 나간다. 그 날 그 날 컨디션에 따라, 혹은 같이 만날 친구의 면면에 따라 나의 낮술 집은 수시로 그 리스트가 바뀐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서울의 낮술 집은 대부분 대낮부터 저녁까지 영업을 하는 집들이다. 대게가 밥집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전문적으로 술을 파는 포차들도 더러 끼여있다.



이러한 낮술 집 리스트는 전적으로 나의 취향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낮술 집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히 맛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겪은 그 집만이 풍기는 분위기 그 자체를 말하고자 함이다. 물론 어느 날은 친절하고 맛있다가도 또 어느 날은 불편하고 투박할 수도 있는 그런 울퉁불퉁한 성격의 집들임을 주지해둔다. 다만 나에게는 아직도 혼자 가도 즐겁고 같이 가면 더 즐거운 낮술 집들이란 사실이다. 이제 나에게 술 한 잔을 얹어주고 여러 가지 즐거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그 사랑하는 낮술 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드르륵.... 그렇군, 오늘도 역시 내가 첫 손님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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