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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y 01. 2016

봄날, 창신동을 거닐다

일이 없는 날은 뭔가 간지럽다

서울 동네골목의 전형적인 만물상회 풍경


하루에 만 보를 걸어야 장수한다는 TV 뉴스를 뒤로 하고 라도 걷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산에 오르는 것은 작정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고 등산장비도 변변히 마련치 못하는 나에게 산책의 배경은 늘 서울의 도심이 그 주인공이 된다.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 봄이 골목에 스며드는 색깔도 구경하고 동네 아이들과 할머니들과 혹은 바쁜 아저씨들과 일상의 대화를 나누면서 걷다 보면 보통 동의 경계를 넘을 때가 많다.


창신동 언덕길의 철물점 골목


봄이 한창 무르익은 4월 초에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내가 찾아간 곳은 서울의 오래된 골목 동네 창신동이었다. 며칠 전 아는 친구가 이리로 이사했을 때 잠시지만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골목골목 빼곡하게 들어앉은 상가와 분위기가 그 옛날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의 형태가 남아있어 호기심이 발동한 탓이기도 했다.


지금은 젊은 작가들이 아지트로 활용하며 그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꿈처럼 몽롱하게 봄빛이 무르익은 날. 서울 한복판 사대문 언저리인 창신동 언덕길에 올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동네는 절집 원각사를 비롯해 엄청나게 큰 바위에 새겨진 자지 동천, 지봉 이수광 선생의 비우당 옛터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역사적인 터였다. 사실 이러한 유적지를 빼고라도 창신동은 참 특이한 감정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것은 만화가 길창덕 님의 명작 '신판 보물섬'의 초기 무대가 되는 서울풍경이 이곳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더란 이야긴데.... 


길창덕 작, 신판보물섬
신판보물섬의 내용
동망봉으로 가는 길


얕은 골목 사이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음식점, 정육점, 철물점과 과일가게들... 그리고 수시로 지나가며 인사하는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까지..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골목이다. 이래서 서울이랬나, 아마 강남의 너른 땅 위에서 칼로 자를 대고 도로를 만든 곳에서 다닌 사람들은 이런 기분을 알리 없을지도 모른다. 빼곡한 느낌... 콩나물시루 같은 골목 사이로 웃음이 화사하게 퍼지는 반가운 인사들과 미소들.... 창신동은 그렇게 만화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동망봉의 달동네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 창신동의 골목을 한참 올라 다다른 곳은 동망봉이란 산동네였다. 왜 동망봉일까 하고 궁금해했지만 딱히 물어볼 때도 없고 해서 참았는데 알고 보니 단종비가 애통한 가슴을 안고 날이면 날마다 올라와서 단종이 가신 영월 쪽을 바라보아 생겨난 명칭이란다. 아! 동망봉이라~용의 눈물이 갑자기 오버랩된다.



그리고는 숭인동 쪽으로 넘어가 서울의 시내를 탁 트이게 바라보았다. 내려오는 길, 주차하기에도 빡빡한 산골동네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미난 놀이를 하고 조그만 상점 앞에 놓인 미니 오락기로 오락을 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그 친구들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동안 시원한 봄바람이 나의 땀을 살짝 거두어 간다.


오래된 한옥집들도 골목골목 사이에 자주 보인다


서울엔 참 산도 많고 사람도 많고 집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곳도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물론 여기도 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많이들 바뀌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바로 맞으며 하산을 한다. 내려오는 길에 보문동에서 뻥 튀기를 하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오늘 산책을 하면서 창신동에서 느낀 즐거움은 그 어릴 적 가물거리는 동네의 내음과 적절한 소음..



반가운 인사. 주정 부리 하는 풀빵 장사 아저씨들 뭐 그런 추억의 풍경들을 반갑게 떠올리는 것이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지는 않았지만 난 하루 종일 노랫소리를 들으며 다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말 가난했을 때.... 서로를 위해주고 보담아 주었던 이웃들. 이제는 세류에 밀려 많이 변질되었지만 왠지 창신동의 느낌은 아직은 그런 정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보문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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