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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Jun 06. 2016

속초 그리고 바다

                                                

해가 뜨기 전 분주하게 잠을 털어내고 세상살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다가 고향이고 바다가 돈벌이 작업장이요... 바다가 꿈이자 삶에 가장 두려운 적이 되곤 하는 사람들... 바로 어부들이다. 해가 떠 오르기 전 통발에 가득 담긴 문어를 건져 올리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 이제는 씨가 말라 없어진 명태 대신 값싼 양미리를 잡아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 뒤로 바다 밑은 또 한번 전쟁 중이다. 햇살이 뜨기 전 바다 밑에 웅크린 자신을 잡으로 통통배를 끌고 오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한 한바탕의 생존 숨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북 실향민들이 피난을 와서 아바이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조그만 뗌마(temma)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들어오면... 방파제에 앉아 들어오는 배의 고리를 넙죽 받아먹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내 친구 아버지이기도 했다. 내 어릴 적 고향 바다는 언제나 그런 삭막함으로부터 날 선 새벽을 맞이했다.. 주먹이 온통 바다를 압도했다.



그 당시 속초는 항구가 미미했고 사람들도 살지 않는 그야말로 황무지 풀밭이었다. 묶을 속, 풀 초라.. 사방에 바람에 날리는 풀 뿐인 동네라 하여 그 이름이 속초로 불렸다. 대포항이 그 당시에는 인근에 가장 큰 항구였고 지금도 대포초등학교만이 유일하게 97회의 졸업 연혁을 자랑하는 것만 봐도 그 짧은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람도 관광자원이라며 설레발을 떨던 사기꾼이 관광지로 속초를 개발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우후죽순으로 흘러들었다. 혹은 돈을 날린 사람들이 배 타고 돈을 벌러 오면서... 여기에 돈을 번 사람들이 유유자적 즐기기 위해 다시 놀러 오면서 속초라는 땅의 문맹적 비애는 시작된다.



항구는 예전의 떠들썩함을 잊어가고 있었고 관람객들에게 밀린 어부들은 고기도 나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나마 좌판을 벌여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바닷가 좌판 활어횟집의 광어나 우럭은 모두 저 아래 남해 쪽에서 양식한 것을 가져오는 것이란 선배의 얘기를 들었을 때 항구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TV 뉴스에 소문난 물회 집들이 난리 장사 통인 것을 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속초는 본래 물회의 명소가 아니었으므로....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놈 아버지가 배 사업을 한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말렸다고 한다. 바다에서 가장 확실한 모험은 역시 배 사업이다. 한바탕 고기 떼를 잘 만나면 대박 터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손 몇 대가 떵떵거리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 떼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온 가족이 모두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 



속초는 늘 그랬다. 어부들은 배를 타기 전 선임금을 받으면 우물 '정'자를 상호로 하는 요정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돈을 탕진하기가 일쑤였고, 외지 사람들은 그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낚싯배만 타 본 사람들이 일 년 내내 해풍을 견뎌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그들의 인생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을 알아 달라는 것은 마치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지하 300미터 아래 막장으로 내려가 달라는 것과 비슷한 부탁이다.

                                                             


그러기에 내가 본 속초는 언제나 칙칙했다. 아니 바다는 우울했다. 그 덕분에 나는 바다라는 것은 와이키키 해변 같은 쪽빛 색깔보다는 차라리 등유가 내리 흘러 시커멓게 물든 그 틱틱하고 어두운 그런 바다를 더 먼저 떠올리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언제나 물에 떠 있어야 하는 상황은 절망적이다. 매일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고 그 전투가 끝나면 늘 소주 한 잔에 몸을 의탁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기억하는 음울한 항구, 속초였다.



긴 시간이 지나고... 12만 명의 유동인구가 뱉어내는 관광지의 모습은 이제는 사라진 어항의 칙칙함을 대신하고 있지만 어린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어부들의 찐한 욕소리와 삶의 투쟁 같은 젓가락 장단... 그리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리어카에 그물을 싣고 올라가던 내 친구와 그 아버지의 긴 한숨소리를 말이다. 그런 속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없지만.. 빈 골목길 위에서 등대 아래 항구로 내려가며 나는 미치도록 그리운 그 암울하고 푸른 옛 속초를 떠올렸다... 


Leica M4 / 21mm F4 S.A 

Leica M2 / 35mm F2 Summic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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