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_ 추억을 달리는 시내버스 (서울-춘천)
맛있는 평양냉면집이 있는 동네에 가면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이때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단어가 지배하고 있다. ‘슴슴하다’란 단어다. 표준어는 ‘심심하다’이지만 왠지 냉면에는 이 슴슴하다란 표현을 써야 평냉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원조 평양냉면 동네인 북한에선 슴슴하다가 표준말이다. 역시나 한수 위다.
춘천에도 슴슴한 평냉집이 있다. 3대 70년 전통의
노포 사농동 평양냉면이다. 원조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가업을 이으며 육수 맛에 대한 호불호가 갈려 말이 참 많았던 집이다. 난 원조 맛은 못 보고 논쟁이 심할 당시 처음 들렀었는데, 신맛이 강한 동치미 육수 맛에 식겁을 하고 다신 안 찾았었다. 그런데 아는 형이 이곳 육수가 원조 맛을 잡았다고 해서 버스 기행 중에 다시 들렀다. 노심초사하며.
일단 면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만족이다. 확인법은 간장 대신 소주 한 잔을 조금 타서 마시면 그 차이를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다시다 국물이 들어간 면수는 소주가 니글거려 한 잔도 마실수 없다. 그냥 면을 삶은 물 그대로면 탁월한 식전 반주로 훌륭하다. 물냉면이 나왔다. 육수를 들이켠다. 아, 뭔가 달라졌구나. 신맛의 동치미는 많이 사라졌고, 거세하지 않은 암소 한우의 양지와 성깃살 맛이 은은하게 감돈다. 감칠맛을 위해 약간 뿌려준 MSG는 눈 감아줄 정도로 착해진 맛이다.
조양동 50년 냉면집이 사라져 춘천에 기댈 곳 없었던 냉면 맛집이 오롯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면발은 예나 지금이나 만족스러우니 고민이 없다. 젤라틴과 감칠맛 때문에 평냉육수는 정말 잘 만들기가 쉽지 않다. 육수를 우려낼 때 빠져나가는 젤라틴과 감칠맛을 동치미로 보강하는데 예전에 그게 좀 과하다 못해 심했었다. 이 밸런스만 잘 맞추면 진득한 고기 국물의 맛과 감칠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그 맛을 다시 잡아낸 노고에 감사함을 느낀다.
냉면파들이 왜 냉면을 심심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꼭슴슴하다라고 말하는지는 여기에서 판가름이 난다. 뭔가를 넣지 않아 심심한 맛이 아니라 뭔가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데 그게 심심할 때, 그 노고에 얹어주는 맛이 바로 유일한 감탄어인 ’슴슴함’이기 때문이다.
#버스오딧세이 #사농동평양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