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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05. 2020

51. 양양 38선 휴게소_점령군의 직선

CHAPTER 3. 바다가 내어준 푸른빛 길 (속초-묵호)


양양시장 정거장에서 12번 버스에 오르면 지경리까지 갈 수 있다. 양양에서 시내버스로 강릉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길 초입에 38선 휴게소가 있다. 조선이 일제에서 해방되고 근대에 처음으로 남북을 갈라놓은 적대적 분단선이다. 지형, 지물, 부락과 문화환경에 전혀 개의치 않고 누군가가 지도에서 자를 대고 쭉 그어놓은 전형적인 점령군의 구분선인 셈이다.



소련군은 8.15 해방이 되기 전 몇 달 전에 이미 국경을 넘어 북조선에 입성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평양과 원산을 접수하고 38선을 그어 남북한 통행과 교류를 막는다. 나는 그 38선과 휴전선 사이에 위치해 있던 소위 수복지구에서 태어났다. 한때는 북녘 땅이었지만 지금은 남쪽의 땅인 양양-고성 대진까지의 지역이다.



한국전쟁 때는 밭일하는 할머니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탱크를 보고도 밭일을 계속했던 동네. 인천 상륙작전 이후 미군이 치고 올라오며 작전지역을 이유로 고향 거진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체 쫓겨 나와 타향살이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고향 땅을 소거당해 강제로 이주한 사람들은 속초 대포, 양양 등에서 온갖 설움과 냉대를 받으며 동란을 견뎌내어야만 했다. 할머니는 생전에 38선 휴게소가 있는 피난처 양양을 농반진반을 섞어 딱 한마디로 특정하시곤 했다.


“거기는 딱 3일만 버티면 평생 살 수 있어야”



얼마나 징그러웠을까. 그것도 모르고 난 대학 초년생 때까지도 이 휴게소에선 그냥 어묵이나 먹었지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 다시 이곳을 지나려니 새삼 고향을 등지고 비탄에 젖었을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숙연해짐을 느낀다. 그 전쟁의 비린내, 고향을 잃은 눈물이 휴게소 어묵과 핫도그 케첩에 비벼져 아주 아주 짭짤한 것이 못내 슬프다.


#버스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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