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리 김태자 어르신의 오메기술
1.5평 남짓 한 작은 방은 그녀만의 아틀리에다. 방 한가운데 작은 소반을 펴고 그 소반 곁에 놓인 조그마한 항아리 뚜껑을 열면 코를 톡 쏘는 알싸함과 묵직한 구수함, 진득한 단내와 베지근한 향이 코끝을 찌른다.
“오합주 한번 만들어신디, 먹어 보실거꽈?”
이 아틀리에의 주인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객(客)에게 술을 권한다.
내가 이 아틀리에의 주인인 김태자 어르신(1942년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19년 4월, 김태자 어르신이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마련한 “제주여성의 삶을 통해 본 제주향토음식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하실 때였다. 김태자 어르신은 그 수업에서 본인의 인생 이야기와 인생에 녹아있는 제주음식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으셨다. 그때, 김태자 어르신이 알려주신 음식은 솔라니죽(옥돔죽) 이었는데 교육생들 모두 어르신의 맛난 옥돔죽과 생생한 인생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날, 실습이 끝날 무렵, 김태자 어르신이 갑자기 노오란 물이 든 페트병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수줍게 웃으시며 사실은 나는 음식보다는 술을 더 잘 만든다고 고백하시는 게 아닌가. 교육생들과 함께 나눠 마시고 싶었다며 어르신이 한 잔씩 나눠 준 그 노오란 물을 마시는 순간 나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에 왠지 모를 감동까지 느꼈다.
"어라? 이거 옛날에 엄마가 아빠한테 해 줬던 오합주잖아?”
오합주는 제주의 전통주이다. 애석하게도 지금 제주의 중장년층 중에서도 이 술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그런데 나는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 오합주를 마셔본 기억이 또렷하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당시 친정엄마는 가끔씩 외할머니가 만든 오메기술을 얻어오셔서 오합주를 만드셨다.
오합주는 단어 그대로 다섯 가지(五)를 합쳐(合) 만든 제주 전통주이다. 그 다섯 가지 재료는 오메기술, 꿀, 생강, 참기름, 달걀 노른자로, 모두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들이다. 그래서 오합주는 약이 되는 술, 즉, 약주라고 할 수 있다.
친정엄마는 외할머니가 빚어준 오메기술을 그대로 마시지 않고 늘 오합주를 만드셨다. 아무리 몸에 좋은 여러 재료가 섞어있고 또 그래서 도수가 낮아졌다고 해도 술은 술인지라, 나는 아빠처럼 한잔을 털어 넣지는 못했고 손가락으로 찍어서 쪽쪽 빨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귀하고 소중한 제주의 음식을 맛본 행운아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오합주의 맛을 기억하는 행운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친정엄마가 외할머니의 오메기술을 가져오지 못하게 되면서 끝이 났다.
“오합주는 술이 아니여. 그냥 약이주게.”
서광리의 1.5평, 그녀만의 제주 전통주 아틀리에를 가지고 있는 김태자 어르신은 오합주를 이렇게 말한다. 맞다. 제주 사람들에게 오합주는 술이 아니라 약에 가까웠다. 김태자 어르신뿐 아니라 내가 만난 제주의 많은 어르신들이 몸이 허하거나 기력을 회복해야 할 때 오합주를 만들어 마셨고, 또는 병이 든 사람에게 오합주를 만들어 먹였다고 한다.
첫 인연을 만들어준 오합주를 시작으로 나는 마치 외할머니 집에 드나들듯이 김태자 어르신 댁을 드나들며 어르신의 술을 마셨다. 어르신 댁에 놀러간다고 연락드리면 어르신은 틀림없이 빙떡을 한 쟁반 가득 만드시고 메밀묵을 쑤어두고 나를 기다리셨다. 그녀의 아틀리에에서는 김치와 빙떡, 메밀묵에 김태자 어르신의 술만 있으면 나이와 세대를 초월한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진다. 함께 울고 웃으며 김태자 어르신의 제주 술에 대한 진득한 애정과 사랑을 안주거리로 얹는다.
어르신의 술, 특히 오합주를 마시면 너무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넉살좋게도 김태자 어르신 댁에 자주자주 놀러갔다.
김태자 어르신은 시어머니께 오메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시어머니 역시 마을에서 오메기술을 가장 잘 빚는다고 이름난 분이었다. 어르신은 일찍 친정어머니를 여읜 탓에 시어머니께 많이 의지했는데 어진 시어머니께 사랑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결혼 직후 남편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어르신은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의지하며 서광리에서 인생의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김태자 어르신 인생의 근간이 되는 음식은 바로 시어머니에게 배운 오메기술이었다. 시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작고하셨지만, 시어머니에게 배운 오메기술은 김태자 어르신의 가족을 지금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내가 첫아들을 낳은 날, 시어머니가 오메기술에 메밀가루를 타서 들이키라고 줘나서. 그 메밀가루 푼 오메기술을 마시는데 허하고 차가운 속이 뜨겁게 차오르는 거라.”
어르신이 기억하는 오메기술의 기억과 맛, 그리고 지금까지 빚어왔던 오메기술은 어르신 가족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메기술은 가족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김태자 어르신 가족들은 엄마가, 아내가 담근 오메기술을 한 잔씩 기울이며 가족의 끈끈함을 다졌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만든 오메기술은 다른 술보다 맛이 좋고 향긋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담갔던 그 시절의 오메기술은 항아리 뚜껑을 열면 그 향긋함이 온 마을에 가득 진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녀가 집에서 빙떡을 말거나 메밀묵을 쑨 날이면 오메기술을 얻어 마시러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꼭 있다고 했다.
“꼭 이상해. 내가 빙떡이나 묵(메밀묵)을 하는 날이면이, 사람들이 와서 내가 한 오메기술 얻어먹으러 와나서. 그럼 난 또 한 잔 안 줄 수가 없주게. 그럼 꼭 신기하게 내 술을 얻어먹은 사람들이 선거나 중요한 일에 꼭 붙어. 근데 이건 비밀인디 난 그 사람 안 뽑아서. 근데도 내 술을 마시면 꼭 그 사람이 붙어. 참 신기한 일이라.”
김태자 어르신의 오메기술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걸까? 오메기술은 누룩 빚는 일부터 시작한다.
“누룩은 추석 지나고 만들어야 돼. 오메기술을 빚으려면 가을부터 시작해서 겨울에 끝나는 거라 아무 때나 만들면 그 맛을 낼 수가 어서. 그래서 난 겨울이 좋아. 가을에 만든 누룩을 가지고 좀 추워져야 오메기술을 담글 수 있으니까.”
김태자 어르신은 가을이 되면 누룩을 만든다. 누룩을 만들기 위해서 어르신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릉리의 한 방앗간을 찾아 누룩을 만들 보리를 갈아오는 일이다. 누룩을 만들 때는 어떠한 이물질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옷차림도 정갈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제주에서는 전통시장에서 흔하게 누룩을 볼 수 있고 또 그 가격이 매우 싸기 때문에 누룩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어르신이 누룩 빚기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그 모습에 숙연해질 정도였다.
그 누룩을 또 정성으로 매일매일 돌봐가며 봐 주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김태자 어르신이 특히 좋아하는 누룩은 빨간 곰팡이가 핀 누룩이다. 김태자 어르신은 그 빨간 곰팡이를 빨간 꽃이라고 했다.
“누룩에 빨간 꽃이 피면 그 빨간 꽃은 나를 춤추게 해.”
누룩이 잘 만들어 지면 습하지 않은 곳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조금 더 날씨가 추워지는 이맘때 즈음 오메기술을 담근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질 좋은 차조를 빻아 가루를 만들어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하여 도넛 모양의 구멍떡을 빚는다. 그 다음엔 큰 솥에 대나무를 깔고 물을 끓여 이 구멍떡을 삶아 건진다. 이 삶은 구멍떡이 바로 제주 어른들이 말하는 오메기떡인데, 지금 시장에서 관광 상품으로 판매하는 오메기떡과는 재료, 맛, 모양이 전혀 다르다. 술을 담그는데 사용하는 밑 떡이기 때문에 소금간도 되어 있지 않고 찹쌀이나 멥쌀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100% 차조로 만든 떡이다. 이 삶은 구멍떡에 팥고물이나 콩고물을 묻혀 먹었던 것이 제주 어른들의 추억 속에 있는 바로 그 오메기떡이다. 그 구수하면서도 쌉싸레 한 차조 맛은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듯싶다.
삶은 오메기떡에 붉은 꽃이 핀 누룩과 오메기떡 삶은 물을 넣고 잘 갠다. 그리고 술독에 넣어 발효시킨다. 보통은 일주일쯤 후에 다시 오메기떡을 만들어 누룩과 섞어 술독에 넣는데, 이를 덧술이라고 한다. 때문에 김태자 어르신의 오메기술은 이양주, 즉 두 번 빚는 술인 셈이다. 그렇게 며칠 더 발효시키면 노란 기름이 둥둥 뜨는 오메기술이 된다. 노란 기름이 둥둥 뜨는 윗부분인 청주만 떠낸 것을 오메기술이라 불렀다. 그 아래 부분은 오메기술 취급을 받지 못했고 탁배기라 불렸다. 그리고 남은 술지게미는 돼지 먹이로 주었다.
김태자 어르신은 오메기술의 성공 여부를 그 노란 기름이 둥둥 뜨는 모양새와 술이 끓는 소리로 판단했다. 술이 잘 발효될 때 술독에 귀를 가까이하면 기포가 톡톡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에 따라 술의 발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술이 빚어지면 김태자 어르신 뿐 아니라 함께 애타게 기다리던 주위 분들도 함께 환호한다.
대부분의 가양주가 그러하듯이 오메기술도 술이자 약이었다. 겨울에 완성된 오메기술은 추운 겨울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 귀한 오메기술에 또 귀한 네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오합주는 더욱 더 귀한 제주사람들의 보약이었다.
오메기술은 마을제에서 신에게 바치는 술로 쓰이기도 했다. 실제로 한림 한수리 영등굿에서는 오메기술을 잘 빚으시는 해녀분이 대표격으로 술을 빚어 올린다. 매달의 운을 그달의 독에 든 오메기술을 보며 심방이 한 해의 운을 점친다.
이렇게 오메기술은 제주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서 건강과 안녕을 지켜주는 귀중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김태자 어르신의 말 중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말이 있다.
누룩은 붉은 꽃을 피우고
븕은 꽃은 오메기술을 피우고
오메기술은 나를 빨갛게 피우네
오메기술이 잘 빚어지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니 왜 김태자 어르신의 술이 특별한지 알 것 같았다. 인생의 소소한 행복과 감사함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지금 세대들에게 어르신의 오메기술 한 잔에 모든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내가 자신하며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글은 <제주의 소리> "제주댁, 정지에書" 에 연재되는 글과 일러스트입니다.
@jeju_cookinglife
오늘도 제주댁 : 제주 음식을 공부하는 제주토박이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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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이로 : 제주도 작은 마을 작은 공방에서 그리고 쓰는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