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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제주댁 Jan 17. 2022

제주에서 가장 귀한 술, 오메기술 이야기

안덕 서광리 김태자어르신의 제주음식이야기

사실을 고백하자면, 김태자 어르신의 오메기술은 특별한 술이 아니다.


어르신이 늘 강조하시는 것처럼, 오메기술은 어르신 댁에서만 만드는 특별한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 나잇대의 여자분들이라면 다 만들 수 있고, 집집마다 누구나 빚어서 마셨던 술이기 때문에 유독 어르신 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단다. 다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었던 한 2년 정도를 제외하고 스물세 살부터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2021년 현재까지 술을 빚어온 일이 본인 인생에서 가장 잘 하신 일이라고 하셨다.


다만 어르신의 술이 유독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술에 대한 어르신의 철학 때문이다. 이는, 어르신이 혼인을 하시고 어르신이 술을 빚기 시작하시기 훨씬 전부터 어르신의 삶 속에서 천천히 쌓여온 것이다.


제주 술에 대한 어르신의 가장 이른 시기의 기억은 어르신이 여덟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또렷한 기억은 토신제에 올리기 위해서 친정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차조와 골가루(엿기름가루)로 만든 감주의 맛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예전부터 발효시킨 감주를 한번 끓여 식힌 “끓인 감주”나 끓이지 않은 그대로의 “생감주”의 형태로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렸다. 제주의 감주는 육지의 식혜와 만드는 법이 비슷한데, 쌀 대신 청차조(흐린 차조, 검은 차조)로 지은 밥에 엿기름을 넣어 삭힌 것이다. 따라서 알코올 성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감주(甘酒)에 왜 술 주(酒)자가 붙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내 생각엔 아마도 제사나 차례에 술 역할을 하는 음료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김태자 어르신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골감주에 대한 어르신의 기억을 조금 더 살펴보자. 어르신의 친정어머니는 감주를 진하게 끓인 다음, 메조가루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 주셨다고 한다. 진하게 끓여 달콤한 감주와 그 안에 들어있는 투박한 메조 새알심의 맛은 어땠을까? 또한 친정어머니는 그 감주에 밥을 넣어 죽처럼 끓여 귤 딸때 간식으로 내었다고 한다. 김태자 어르신은 다른 제주 어른들처럼 엄마 어깨너머로 골감주를 비롯한 제주 술과 발효음료 만드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친정어머니도 술을 잘 담그셔서 오빠들이 대봉통으로 부모님 몰래 마시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는 중 깨났다라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런 어렸을 적 음식 경험이 있었기에 23살에 시집온 후 시어머니의 오메기술을 배울 때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을 것이다.

누룩을 빚고 있는 김태자 어르신.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대부분의 제주 가양주와 마찬가지로 김태자 어르신의 누룩도 보리쌀로 만든다. 보리를 거칠게 갈아  가루를 반죽해 디뎌 누룩을 띄운다.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있는  물을 최대한 적게 넣는 것이 좋은 누룩을 만드는 비법이라고 한다. 누룩을 만들  육지부에서 사이사이 볏짚을 끼워 넣어 공기를 통하게 하고 발효를 돕는 것처럼 제주에서는 조짚을 사용했다. 벼를 재배하는 지역에서는 볏짚을 사용하기도 했고  짚보다 흔한 보릿대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어르신은 주로 콩대를 사용하신다고 한다.


좋은 누룩을 만드는 법은 오랜 시간 시간과 경험을 들여 체득했다. 습기를 눌렀다 잡았다 반복하며 누룩이 다양한 색의 곰팡이를 피울 수 있게 조절하는 것은 몇 년간의 시간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으며 거의 반백년 세월을 통해 얻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누룩을 굴묵(구들에 불을 지피기 위해 만든 구멍을 이르는 제주말)이나 정지(부엌을 이르는 제주말) 아무 데나 질러 박아도 누룩꽃이 잘 피었다고 한다. 아궁이가 가스레인지로 바뀌고 흙바닥이 잘 정돈된 서구식 바닥으로 바뀌면서 제주의 누룩은 굴묵이나 정지가 아닌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아무데서나 잘 뜨던 누룩은 신생아 기저귀 갈아주는 것처럼 조심스런 손길로 다뤄야 검은 곰팡이가 아닌 예쁜 곰팡이가 피는 누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르신이 만든 누룩은 보리누룩이다. 홍황국이 핀 누룩

어르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누룩은 홍황국,  빨간 꽃과 노란 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는 것이다.  누룩을 사용하면 좋은 술이 나온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어르신이 누룩을 만들면 빨간 홍국이 가장 많이 나오고 황국, 백국, 청국, 흑국 다양한 곰팡이꽃들이 핀다. 매해 같은 방법으로 띄워도 매해 마다 다른 결과의 누룩이 나온다. 그래서 홍국을 가득 머금은 누룩이 나오면 김태자 어르신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 내리신다고 한다. 수십  동안 만들어도 어떤 색의 누룩 꽃이 필지는 누룩이   때까지   없기 때문이다.   달간의 정성스런 기다림 끝에야  해의 누룩꽃들을 만날  있다. 그래서 어르신은  누룩을 단순히 식재료로 보지 않고 소중한 생명으로 보았다. 어르신이  글을 보면   있다.

엄마 보리하고 곰팡이와 누룩이 자매


 뜨거워

우리 엄마는 맨날 우리를 잔뜩 데이게 

할까? 조용해, 엄마 화나면 

노랑저고리에 붉은 치마 흰양말 곱게 

 만들어 주셔. 이년의 계집애들,

뭐가 어떻다고?  엄마 아니면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춤을 추면서 

넥타이  한량들 가슴 설레게 하며 

사랑받을  있을까?

뜨거워도  참아야 

고운  많이 피워내야 

여기에도 오라, 저기에도 오라 하며 

인기 좋고 춤도  추게 된단다.

엄마   들으렴

~

 딸들 착하다


김태자 어르신이  누룩자매이야기


 

 자매에게 노랑저고리(황국) 빨간치마(홍국) 곱게 입혀주려 한다는 표현이나 조급하게 나오고 싶어도  참아야 여기저기 인기 좋고 춤도  추는( 괴는,  발효가 되는) 좋은 누룩이 된다고 생각하는 어르신의 글은 우리의 인생사와도 닮아있다.


“누룩이 술보다도 더 어렵고, 시루떡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김태자 어르신은 누룩 띄우는 것이 오히려 술빚기보다 더 어려워 더욱 공을 들이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김태자 어르신의 홍국이 가득 핀 누룩은 어르신의 팔십 인생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르신에 따르면 팔월멩질(추석, 제주사람들은 추석을 팔월멩질 또는 고슬멩질, 설날은 정월멩질이라 부른다)이 지나고 하늬바람이 불며 선선함이 찾아오는 시기가 누룩 만들기에 적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촐(꼴) 베는 시기쯤이다. 어르신에 따르면 이땐 만든 누룩에는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좋은 날을 택해 만든 어르신의 누룩은 유독 힘이 좋아 누룩을 많이 넣지 않아도 술이  되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한여름, 식은 밥에 어르신이 만든 누룩을 넣어 쉰다리를 만들어 자기 전에 냉장고  방바닥 두면 아침에는 쉰다리병이  터져버릴 정도로 괴어버리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그리고 술을 빚을 때도 얼마나 발효가  되는지 괴어 올라오는 기포 하나하나가 오백원짜리 동전만큼 컸다고 한다.


제주 흐린차조로 만든 밑떡인 오메기떡과 붉은오메기술.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붉은 곰팡이가 많이  홍국으로 빚은 오메기술은 기름이 뜨고 붉은빛을 띠는 오메기술이 된다. 만드는 법은 이렇다. 우선 차조를 가루 내어 익반죽한 다음 떡을 만들어 삶는다. 삶은 떡을 건져  뜨거운 상태에서  삶은 물을 조금씩 흘려가며 개어준다.  다시  형태로 만들어 준다. 떡을 으깨가며  형태로 만드는 작업은 여간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지난한 작업 끝에 고운  형태가 되면 누룩을 넣어 술항에 담아 발효시킨다. 그러면 빨간 저고리와 노랑 치마를 입은 누룩자매들이 열심히 춤을 춘다. 그렇게 발효가 되면 제주 사람들은 “술이 괴엄쪄한다. 술이 괴는 것은 소리로   있다. 술항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면 “톡톡하는 경쾌한 종소리가 들린다. 대략 술을 빚는 날로부터   달여 정도가 되면 술이 완성된다.


술이 다 발효되면 걸러낸 뒤 가라앉힌다. 가라앉힌 술의 윗국, 즉 맑게 떠오른 부분은 청주, 우리가 아는 오메기청주가 된다. 그리고 차조와 누룩전분들이 섞인 아랫부분은 탁주, 오메기탁주가 된다. 그리고 걸러낸 찌꺼기는 술지게미가 된다.


이렇게 위에 뜨는 오메기청주, 즉 오메기술은 정말 귀한 술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제의때 사용했다. 이 청주에 달걀노른자, 생강, 꿀, 참기름을 넣어 만든 약용주인 오합주는 제주 가정에서 전해내려오는 보약 중의 보약이었다. 제주 어른들 기억 속에 수십년 전, 기침을 하거나 감기기운이 들면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만들어서 줬다는 달달한 약은 오합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태자 어르신 역시 오메기청주는 따로 걸러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셨다. 오메기탁주는 평상시 마시는 청량음료의 역할을 했는데 특히 밭일 다녀와서 한 잔 시원하게 마시면 하루의 피곤함이 싹 가셨다고 한다. 지친 하루를 위로해 주는 한 잔이었다.


술지게미는 돗통시에 넣어주면 토종돼지들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 돗통시의 돼지들은 그 술지게미를 먹고 볏짚 위에 용변을 본다. 그 볏짚은 다시 농사를 하는데 훌륭한 돗거름이 된다.

어르신의 오메기술은 마을사람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


마을에 잔치가 있어 오메기술이 필요한 집은 김태자 어르신의 술을 얻어갔다고 한다.


큰일이 없어도 마을 분들은 김태자 어르신의 집에 찾아와 어르신에게 술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어르신은 술을 달라고 하는 마을사람에게는   바가지라도 주고 보내야 본인의 마음이 편해지시는 그런 인심 좋은 분이셨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도 김태자 어르신의 술을 마셨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나는 시어머니가 엄마였다. 일러스트=色色. 제주의소리

삼춘, 틀린  어수과? 틀린  어서마씨?” 조카도 술을 달라고 했다. 뒤따라 “삼춘, 틀린  어수과? 틀린  어서마씨?” 동네 청년들도 술을 달라고 했다.


이렇게 조카들과 동네청년들이 애가 타게 찾는 “틀린 술”, 즉 다른 술, 특별한 술은 오메기탁주가 아닌 “오메기청주”였다.


어르신 자녀분들의 잔치뿐 아니라 가족의 경사에도 어르신은 직접 오메기술을 만들었는데 가장 최근 손자 돌잔치 때는 오색 떡과 함께 오메기술을 대접했다고 한다.


어르신 나이 23살, 58년 동안 마을 내 크고 작은 행사에 빠지지 않았던 김태자 어르신의 오메기술은 어르신 가족의 술이자 제주 할머니들의 술이었다.


어르신은 좋은 누룩으로 만든 술은 “독이 없는 술”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안주가 없어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오메기술 한 잔이 곧 보약이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 그만이고, 거기에 메밀묵이나 빙떡 정도 곁들여 먹으면 그것이 최고라 하셨다. 이 “독이 없는 술”을 마신 사람 중에 술마시고 어디 가서 실수했다는 말 한번 들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어르신의 또 다른 자랑이다.


2019년 겨울, 어르신의 오메기술 마지막 수업날.


나는, 어르신이 품에  안고 계시던 있던 종이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어르신의 술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삐뚤빼뚤 쓰인 글씨조차 어르신이 어떤 감정을 담아 눌러썼는지 알기에 더더욱 감동스러웠다.


어르신의 누룩과 오메기술에 대한 글은 빨리 성공하고 싶은 20~40대의 젊은이들에게도, 50 넘어 이제는 안정적인 위치에서 인생의 최고점을 찍어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급급해하는 중년들에게도, 60 넘어 생각보다 이뤄둔  없다고 허무함을 느낄지 모르는 장년들에게도 소소한 감동과 위로가 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묵묵히  자리에서  순간 나의 삶에 불평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달콤하고 농후하게  익은 “독이 없는매력적인 술향을 뿜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저는 이제야  인생에서 철이    같습니다. 이제야 인생이  재밌어지려고 하네요. 오메기술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정말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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