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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제주댁 Nov 14. 2021

할망하르방 지혜의 맛-노란기름 둥둥뜨는 오메기술

확실히 다른 스승 김태자 할머니 “오메기술은 우리 집 내림음식이여”

2019년 4월 12일, 둘째 아이를 낳고 딱 3개월 되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아직 갓난아기였던 둘째를 차에 태우고 차를 몰아 5·16도로를 따라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갔다.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했던 ‘제주여성의 삶을 통해 본 제주전통식 문화 이야기’ 교육을 듣기 위해서였다. 노산에 둘째를 낳고 몸조리를 좀 더 했으면 하는 어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백일도 채 안 된 아기를 이동식 요람에 눕혀 교육장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걱정과 감탄이 반반씩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내가 운명처럼 김태자(80) 어르신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김태자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그날 그 핏덩이를 안고 서귀포로 향했던 것이다.


김태자 어르신은 그때까지 내가 만났던 제주음식 스승님들과 결이 다른 분이었다.


그 날의 수업은 달랐다. 제주음식의 정의나 레시피를 정형적인 설명이나 강의로 들으며 공부해 왔던 그 전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패턴이었다. 그날 김태자 어르신의 이야기는 곧 어르신의 삶이었고 인생이었고 기억이었다. 그것은 한 어르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지만 동시에 우리네 곁에 계시던, 마을 어귀 쉼팡에 앉아 계시는 우리 제주 할머니들의 삶이기도 했다.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수업 끝에 등장했다. 서귀포농업기술센터 과장님이 '사실 김태자 어르신은 솔라니죽(옥돔죽)도 잘 하시지만 오메기술을 정말 잘 빚는 어르신'이라며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김태자 어르신이 병 하나를 꺼내어 꼬옥 안고 수줍게 말씀하셨다.

김태자 어르신이 꺼내 든 병에는 오합주가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마디에는 굳은 살이 박혀있지만 김태자 어르신의 저 손끝에서 온갖 보약과 같은 제주의 먹거리들이 만들어진다. /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보약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은 약이니 여러분들께서 꼭 한 잔씩은 마셨으면 합니다.”


그리고는 한 분 한 분 앞에 서서 직접 그 술을 따라 주셨다. 어르신이 따라주신 탁한 노란빛의 액체를 코로 가까이 가져다 대니 익숙한 향기가 났다.


“오합주!!”


나에게도 오합주에 대한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오메기술 청주에 꿀과 생강, 참기름, 달걀노른자를 넣고 숙성시켜 만든 오합주를 만드셔서 외할아버지에게 약주로 드렸다. 물론 외할머니의 오합주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를 위해 큰딸이 살고 있는 제주시로도 넘어왔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오합주를 받은 나의 엄마는 이 약은 어린 아이들은 먹는 것이 아니라고, 어른들이 먹는 약이라고 하셨지만, 어린 나는 그 맛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몰래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그 매력적이고 베지근한 단맛이라니! 그래서 부모님 몰래 조금씩 훔쳐 마셨다. 어르신이 건네주신 술을 한 모금 입에 머금자, 단숨에 그때의 맛과 향, 그리고 부모님 몰래 맛보았던 기억, 외할머니의 자애로운 얼굴까지 한 번에 떠올랐다.


김태자 어르신의 보약을 입에 털어 넣은 나는 흥분된 마음을 계속 가라앉혀야만 했다. 거의 이십여 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나의 기억 아주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던 오합주 DNA가 꿈틀거리며 깨어났는지 심장은 계속 쿵쾅거리고 흥분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공된 텍스트로만 제주음식을 공부해 왔던 나는 나를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든 김태자 어르신을 또 만나 뵙고 싶었다. 아니 김태자 어르신이 가지고 있는 제주의 술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운 좋게도 대정 부녀회원분들이 제주의 오메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의뢰를 하셨고, 나는 주저 없이 김태자 어르신을 찾아 뵈었다. 그렇게 김태자 어르신은 대정 부녀회원분들에게 누룩 빚는 법부터 오메기술 빚는 방법까지 수업으로 풀어주셨다. 그 이후 나의 술 선생님이자 인생 선배님,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스승님이 되어주셨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의 장벽을 뛰어넘어선 소울메이트로 서로의 곁을 채워주고 있다. 나의 소울메이트는 내가 어르신의 집을 찾을 때마다 그녀의 보물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신다.


김태자 어르신은 추석이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할 때부터가 누룩 빚기 딱 좋은 시기라고 말씀하신다. 어르신은 직접 방앗간에 가셔서 보리를 갈아 누룩을 만들어 빨간 꽃을 틔우고 그 누룩으로 오메기술을 빚는다. 차조를 곱게 빻아 익반죽하여 오메기떡을 만들고 오메기떡 삶은 물과 밑떡을 섞어 으깨어 누룩을 섞는다. 이것을 항아리에 발효시키면 김태자 어르신의 오메기술이 완성이 된다. 맑게 떠오르는 윗국을 조심스럽게 떠내면 청주가 되는데 이는 오합주나 중요한 의례에 쓰시고, 탁배기는 일상에서 즐겨 마신다. 아래 가라앉는 술지게미는 퇴비로 쓰거나 옛날 돗통시에 던져 돼지들의 먹이로 주었다고 한다. 그 술지게미를 먹은 돼지가 돗거름을 내니 오메기술은 제주사람들의 음식답게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술이다.


1942년생이신 김태자 어르신은 친정어머니를 일찍 여의셨다. 그리고 1963년에 서광서리로 시집오셨다. 시집오자마자 남편분께서 군에 입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김태자 어르신은 서로를 의지하며 사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부재가 컸던 것일까. 김태자 어르신은 시어머니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의지하셨었나 보다. 수줍게 꺼내 보여주신 어르신의 그림과 글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보통 그 당시에 시집을 가려면 친정에서 옷과 이불, 궤짝, 양은 대야를 준비한다. 특히 이불은 목화를 키워 만들고 옷도 옷감을 끊어다 직접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김태자 어르신은 시어머니에게 술을 빚는 법을 배우셨다. 물론 술뿐만 아니라 제주음식도 대부분 시어머니에게 배우셨다.  시절 시어머니는 술을  빚기로 마을에서 정평이  계셨다. 김태자 어르신은 시어머니께 보리로 누룩을 빚는 법부터 오메기술을 빚는 방법, 오메기술 청주로 만드는 오합주, 누룩과 보리밥으로 만드는 쉰다리, 고소리술 닦는 방법까지 모두  배웠다. 그리고 매년마다 오메기술을 빚어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마셨다. 김태자 어르신의 술은 남편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연결고리였고 어머니의 오메기술을 마시며 장성한 어르신의 자제분들에게는 오메기술이  어머니였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전수 받은 어르신의 오메기술 역시 마을에서 이미 훌륭한 술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김태자 어르신이 가족들과 함께 마시려고 오메기술에 어울리는 메밀묵을 쑤거나 빙떡을 지지고 있으면 필연 누군가 올레 돌담 넘어 얼굴을 불쑥 내밀며 어르신의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이윽고 그 ‘객’도 젓가락과 술잔만 더해 식구(食口)가 된다. 식구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어르신의 오메기술을 함께 마신다. 그러면 어르신의 집은 사람 사는 향기와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고 한다.


그렇게 어르신의 오메기술을 마신 사람들은 마을의 중요한 선거에 꼭 당선이 되었단다. 마치 어르신의 술이 부적과 같았을까? 이는 김태자 어르신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으신 것 같다.


내가 빚은 오메기술을 받은 분들은  당선되었어.  희한해.”


오메기술 자체도 빛나지만, 그 술을 건네는 사람의 손에 담긴 기운.

나는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메기술을 빚는 김태자 어르신의 손에는 어떤 맛의 비법이라고 숨겨져 있는 것일까?



'손아 고맙다'  

올해로 80세인 김태자 어르신이 직접 그리고 썼다. 김태자 어르신의 삶과 역사는 손에 그대로 투영되는  같다. 10 전에는 들나물, 마늘 캐면서 고생했고  커서는 고사리 꺾고 삼동 타면서 땔감 모아 팔며  돈으로  사입고 야학에 다니셨다.  커서는 광목에  놓으며 시집갈 준비를 하시기도 했다. 김태자 어르신은 본인의  그림에서 어린 시절 손으로 했던  놀이들도 떠올리시는 듯하다. 어르신은 이제는 80 가까이 고생한 어르신의 , 이제껏 살아왔던 인생이 가장  투영된 손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여주신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다독여 본적이 있을까? 내가 아는 김태자 어르신은 어르신의 곁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표현하신다.


어르신은 사소한 일상과 자연에  감사함과 겸손함이 배어 있는 분이다.


그래서 지금껏 나와의 대화에서도 반말을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다. 늘 상대방의 말을 존중해 주시고 배려해주신다. 이런 어르신의 올곧은 성품이 좋은 오메기술을 빚게 하는 가장 큰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의 방에는 늘 좋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매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또 글 쓰는 것도 좋아하시고 시를 읊는 것도 좋아하신다. 경쾌하게 뽑아내는 곡조 하나는 이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된다. 이런 인품에 술까지 잘 빚으시니 나는 김태자 어르신이야말로 ‘예술인’이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인’이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리는 김태자 어르신. 평소 그림그리기를 즐겨 하신다. 물론 한번도 그림공부를 정식으로 해본 적이 없는 분이다. 일러스트=色色
어르신의 방에는 늘 좋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매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어르신은 양봉도 하시는데, 양봉을 하게  연유도 동화 같다. 아버님이 벌을 좋아해서 양봉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셨는데 마침 거의  읽고 있는 즈음에   마리가 집으로 들어오더니 그게 이십여  동안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내외분은 집으로 들어온 벌을  지켜주고  번식시켰던 것들을 크나큰 행복으로 여기며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계셨다. 그래서일까? 어르신의 오메기술을 머금으면 입안에서 꽃향기가 퍼진다.


어르신에게 55 넘게 빚어온 오메기술은 매년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이다. 그런데 올해, 어르신이 여느  와는 사뭇 다른 톤의 목소리로 이렇게 진하고 깊은 노란 기름이 둥둥 뜨는 오메기술은  보기 드물게   것이라고 나에게 집으로 빨리  보라고 하셨다.

김태자 어르신이 빚은 오메기술과 술상. 이렇게 샛노랗고 기름이 둥둥 뜨는 오메기술은 처음이다.

전에도 김태자 어르신이 빚은 오메기술을 자주 마셔봤지만 이렇게 샛노랗고 기름이 둥둥 뜨는 오메기술은 처음 보았다. 아니 사실 김태자 어르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제주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담근 오메기술을 보거나 마셔보지 못했다. 제주시로 넘어온 나의 외할머니에게 받은 술도 오메기술이 아닌 오합주였다. 제주의 술이지만 점점 제주 사람들의 기억에서 옅어지고 있는 오메기술. 나는 어르신이 아직 굳건하게 지켜가고 있는  오메기술의 맛과 향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따라 주신     허투루 마시지 않고 천천히 느끼고 음미했다. 그리고  오메기술 만큼은  김태자 어르신의 자제분들이 이어서 지켜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맞다.  오메기술은 김태자 어르신 집의 내림 음식이다. 60년대 중반 즈음부터 현재까지 매년 연례행사가  김태자어르신의 오메기술 빚기는 어르신의 친정에서도 이어져   문화이다. 어르신의 기억에도 “나의 외할머니 오합주처럼 추억과 기억이 있는 술이다.


그리고 비단 어르신뿐일까?


제주사람들의 각각의 집에도 모두 제주의 술 향기가 분명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김태자 어르신의 이번 오메기술이 유독 노란 기름을 가득 머금고 나오게  이유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다음 편에서 어르신의  빚는 법을 조금  깊이 있게 다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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