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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Mar 26. 2022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제관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 본 날이었다.

미국 대사관 바로 옆에 있는 이 건물도 나름 역사가 있다. 원래는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들어선 뒤 몇몇 정부 부처가 사용했고, 2012년 박물관이 개관할 때 그 건물 내외부를 리모델링 해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대사관 쪽에서 걸어 올라오면 동선이나 시선상 이 건물 전체 모습을 눈에 담기가 쉽지 않으나 전체적인 모습을 둘러 보면 그럴듯하게 생겼다. 눈에 들어오는 가장 큰 특징은 올해 2월 외벽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 없을 때는 뭔가 밋밋해 보였던 외관이 더 세련돼 보이는 느낌이다. 밤에 보면 더 멋있을 듯.

이날 짐이 많아서 라커를 사용하려고 봤더니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하는 것이라 적잖이 당황을 했다. 결국 밖으로 나가 박물관 건물 뒤에 있는 편의점에서 어거지로 음료수를 하나 샀다. 내가 그래도 박물관 다녀본 곳이 꽤 되는데 요새는 거진 다 전자식 락커던데... 이건 좀 바꿔줬으면 ㅎㅎ;;

오늘 포스팅의 주제인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전시. 전시는 3층 주제관 1에서 진행 중이며 무료다. 사전예약도 필요 없음.


재미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1월 말쯤 개막 소식을 들은 이후 빨리 가서 봐야지 싶었다. 근데 알고 보니 특별전이 아니라 상설전시의 일부라서 굳이 서두르거나 종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책 모양 화면과 전시 서문 키오스크. 책 모양 화면은 빔을 쏘는 건지 자체적으로 불이 들어오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문구가 계속 바뀐다.


첫머리에서부터 볼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의 '베스트셀러'를 소재로 한 전시다 보니 전시품의 구성이나 배치가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전시는 꾸며놓기도 잘 꾸며 놓았고 체험이나 상호작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예상보다 더 즐길만했다.

광복 이후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자유부인'과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이 전시 초입에 따로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이번 전시의 1부 격이다. 하단 스크린 옆에 있는 선 달린 까만 물체(?)를 들고 귀에 갖다 대면 소리가 나오니 영상과 함께 보면 된다.

2부 [산업화‧도시화의 그늘 - 경아, 영자 그리고 난쟁이]부터는 1970년대부터 시대 순서대로 베스트셀러를 조명한다. 


70년대에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를 비롯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화되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다음 공간인 3부 [비판과 저항의 독서문화 - 금지된 베스트셀러]가 참 매력적이었다. 군사독재 시기 금서로 지정되어 공식적인 베스트셀러라고 볼 수는 없지만 대학가 등에서 몰래몰래 돌려보다 보니 사실상 베스트셀러나 마찬가지였던 책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책 표지가 그려진 사각형 판을 꽂으면 해당 책에 대한 내용이 벽에 비춰치는 장치도 있었다. 사상계, 오적, 박노해 시집 등이 있었는데 신기하기도 했고 각 책마다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해져서 하나하나 넣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서랍을 열듯이 볼 수 있도록 한 장치도 재밌었다. 뭔가 숨겨둔 금서를 찾아 읽는 기분.

80년대 말~90년대 베스트셀러가 소개되는 4부 [성공을 향한 솔직한 욕망 - 어느 샐러리맨의 책장]에서는 점점 눈에 익은 책들이 나온다. 

전시에서는 이 시기를 냉전이 끝나면서 이념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져가고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성공을 추종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하는 때로 설명한다. 베스트셀러로 오르기 시작한 자기계발서, 실용서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서점마다 주식, 부동산 등 투자 관련 서적이 매대에 깔린 오늘날을 생각해 보면 이 트렌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좌우로 이동시킬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는데 정해진 위치에 이동시키면 해당 위치에 있는 책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다. 길~다란 진열장의 모든 책을 확인하기가 쉽진 않지만 오래전 베스트셀러 중 궁금한 것이 있다거나 과거 재밌게 읽었던 베스트셀러를 발견하게 된다면 한 번쯤 정보를 확인해 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나가는 길에 베스트셀러 구절 책갈피를 받을 수 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이 있고 원하는 대로 가져가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은 기념으로 각 색깔을 하나씩 가져가시는 것으로 보이나 나는 이때 뭔가 알 수 없는 배려심과 사양지심이 샘솟아서 빨간색 하나만 가져갔다.

네 알겠습니당...


인생은 결코 춤과 노래로 수놓은 흥미로운 축제가 아니고 부단한 수고와 노력을 요하는 정성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병욱, 사색인의 향연(1962)


ㅎㅎ...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할 것 같은 메시지였으나 문장은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색인의 향연]은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난 철학자 안병욱 선생의 수필집이라고 한다.

다음에 또 가게 되면 파란색이랑 노란색도 뽑아와야지. 문득 드는 생각이 색깔마다 문구의 톤이나 주제가 다른 건 아닐까?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거라면 내가 뭣도 모르고 동기부여 매운맛을 톡톡히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시를 가기 전에는 서울역사박물관 [범 내려온다!] 전시처럼 아주 규모가 작은 전시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직접 가보니 그렇게까지 작은 전시는 아니었다.

'베스트셀러'를 주제로 한 전시인 만큼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평소 다독을 하는 사람은 그중 실제로 읽어본 책이 꽤 많을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옛날부터 다독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지적 허영심 탓에 베스트셀러보다는 고전이나 전문서적에 가까운 것들을 꾸역꾸역 읽는 편이라 이번 전시에 소개된 책 중엔 읽은 것이 거의 없어서 약간 민망했다 ^^;;

다만 그런 점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볼 것도 많고 이것저것 직접 만지고 선택하면서 볼 수 있는 내용도 많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봄이 시작되면서 경복궁이나 광화문 인근 놀러 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전시는  30분 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전시이니 이 근방에 올 경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포함한 코스를 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특히 나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물 안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보는 전망이 무척이나 좋다고 하니 이것 또한 함께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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