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냄새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를 보고

by 해은


설음식 중에 나는 떡국을 좋아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라 해도 나는 떡국이 좋다. 어쩌면 어렸을 때, 엄마가 떡국 위에 뿌려 주었던 후추 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묘한 향과 알싸한 맛이 강렬했다. 그 이후부터 후추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후추는 옛날에 금보다 더 비싼 향신료로 여겨졌으며 유럽에서 후추를 손에 넣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후추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대항해 시대를 열었으며, 식민지 개척과 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음식의 풍미를 돋게 하는 것처럼 향신료는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다.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음식의 맛과 풍미를 한껏 더해주는 존재이다. <터치 오브 스파이스>는 이렇듯 음식을 인생 전체에 비유해 오감을 자아낸 영화이다.


1959년 이스탄불에 사는 그리스인 혈통의 꼬마 파니스는 할아버지의 향신료 가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의 할아버지는 천문학자에 미식가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파니스에게 향신료에 비유한 천문학을 설명해 준다. 그는 아이에게 후추를 만져본 뒤, 맛보게 하고 질문한다. 따뜻하고 후끈하지. 파니스는 태양이라고 답한다.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은 무엇을 굽어보니? 모든 것. 그래서 많은 음식에는 후추가 들어간다는 식으로 알기 쉽게 전달하는 모습이 지혜롭다.


할아버지의 대사는 단순한듯해도 의미심장하다. 음식과 삶에는 소금이 필요해. 삶의 맛깔을 내려면 꼭 소금이 들어가야 하지. 아이는 요리와 요리 속에 함축된 인생의 철학을 배운다. 그에게 가게 다락방은 우주라고 상상될 만큼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느 날, 파니스의 가족은 그리스인인 아버지 때문에 이스탄불을 떠나 그리스로 추방된다. 튀르키예와 그리스 간 분쟁의 역사로부터 비롯된 아픈 시대적 역사가 있다. 떠나는 파니스에게 할아버지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안 보이는 것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더 듣기 좋아한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숨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깊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음식에는 보이지 않지만 맛을 내는 소금과 후추 같은 것들처럼 말이다. 파니스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요리를 하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음식의 맛과 향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메우지는 못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야 중년의 파니스는 비로소 이스탄불에 돌아가게 된다.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너무 늦게 돌아온 것이다. 파니스가 이스탄불로 돌아가기를 꺼려한 것은 추방당한 상처의 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도 역시 같은 상처를 안고 되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돋보였던 것은 이스탄불의 갖가지 향신료가 들어간 화려한 성찬들이었다. 그 향기가 화면 밖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장례식 후, 파니스가 오래전 문 닫은 먼지투성이의 할아버지 가게를 찾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향신료 가루와 마른 열매들을 주워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 올려놓는다. 종이를 들어 올려 후하고 불어버리자 아스라이 떠도는 가루들 사이에 작은 행성들이 떠다니는 우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낙엽처럼 부스러진 과거의 파편들과 마음에 부는 공허한 바람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약속도 모두 떠난 뒤, 그에게 남은 것은 눈처럼 흩날리는 기억의 냄새다.


음식은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시도한다. 설날의 풍경들, 그리운 얼굴들이 떡국 한 그릇 속에 담긴 온기와 냄새 속에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게 한다. 음식에 얽힌 이야기는 변주곡처럼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삶의 철학이 들어있고 인생의 맛이 담겨있다. 음식과 기억의 냄새로 일상의 위로를 건네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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