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앞에 두어야 할

풍경소리

by 해은

미술관 소품 가게에서 도자기로 만든 풍경을 하나 샀다. 하얀 색 주름 잡힌 모자 끝에 파랑 색 물감이 번진 듯 칠해졌고 늘어진 줄에는 동그란 고리 아래 작은 새 한 마리가 달려 있다. 흔히 보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인 것은 소리가 날아가듯 멀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바람 앞에 두어야 할 물건이다. 사방이 막힌 아파트 실내라서 걸어둘 데가 마땅치 않았다. 우선 오며 가며 눈으로 즐기겠다고 부엌의 냉장고 옆 전등갓에 걸어 두었다.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 존재를 자꾸만 잊어버리고 눈길을 주지 않게 된다.


가끔 여행가서 절에 들렀을 때 처마 밑에 풍경 소리가 듣기 좋았다. 은은한 울림에 빠져 하염없이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평상시 올려다보지 않던 하늘과 느리게 흘러가는 흰 구름의 형상이 고요하게 나를 감싸주던 시간이었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도 마땅히 물고기처럼 자지 않고 수행에 임하라는 뜻에서 물고기 모양의 풍판을 달았다. 일정한 강약이 아니라 셈 여림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울림은 산사를 오가는 이의 지친 마음을 쉬게 해주었다. 하여 시골의 전원주택에 살게 되는 날이 오거든 풍경을 걸어두어야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그 꿈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제자리를 찾기는 요원한 일이다. 다만, 집안의 양쪽 창문을 열면 맞바람에 한 번, 혹은 두 번 딸랑거리며 나 여기 있다는 듯이 운다.


우리 집 옆은 바람 골이 있다. 동과 동의 건물 사이로 다른 데보다 바람이 많이 부는 편이다. 전등갓에 걸어두었던 풍경을 베란다로 옮겨 달았다. 바람 길이 열릴 때마다 울리는 청아한 소리. 뎅그렁 뎅그렁 풍경의 흔들림은 작은 종소리 같기도 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식탁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소리를 기다린다. 그 맑은 울림이 집안 구석구석 닦아주고 내 마음까지 말끔히 씻어주길 바라면서.


나는 왜 쉼, 온전한 휴식을 강조하는 것일까. 결혼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집살이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또한 낮에도 밤에도 멈추지 않은 휴대폰의 알림. 적당한 응답이 예의가 되고 끊어질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연결 고리들. 반면에 누구에게도 쉽게 열지 못하는 마음은 서로를 외롭게 만든다. 이제는 긴장의 끈을 좀 느슨하게 풀어도 좋을듯하다.


일상생활 속 공간의 소리는 대체로 그곳을 점유한 사람들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집 앞에는 아침마다 등교 길에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건널목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봉사자들의 따뜻한 인사말이 활기차게 들려온다. 한낮의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공을 차는 아이들의 응원과 함성, 체육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호각 소리 등은 기분 좋은 소란함이다.


음역대가 다른 금속으로 만들어진 풍경을 함께 걸어두고 2중주의 화음을 듣는다면 어떨까. 나뭇가지의 흔들림,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 새들의 지저귐이 합해진다. 주변의 사물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상의 악보에 한 음, 한 음 연주를 한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는 바람. 소리는 빛보다 더 깊이 스며든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즈넉한 소리를 듣는 일은 회복이자 저항이며, 선물의 시간이 아닐까.


*색바람에 살랑이는 잔잔한 파장은 고즈넉한 합주가 되어 허허로운 마음을 채운다.


*색바람 : 이른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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