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의 인사

나무가 건네는 언어

by 해은


자작나무는 하얀 몸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가지마다 잎들이 노랗게 단풍들고 마른 풀과 낙엽의 냄새가 그윽하게 다가왔다. 숲의 초입부터 어디선가 딱따구리가 나무둥치를 쪼는 소리가 들렸다. 도토리가 낙엽 위에 후드득 떨어져 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부작사부작 낙엽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은 잎의 크고 작음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크고 넓은 떡갈나무 잎은 무겁고 둔탁하게 떨어지고 작은 잎들은 가볍게 사그락 마른 잎을 떨구었다.


산의 중턱쯤 다다랐을 때, 길가 쉼터 옆에 서있는 한 그루 휘어진 자작나무를 만났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서 오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있었다. 나는 그저 몸체의 삼분의 일쯤 휜 나무의 등이 아플 것 같아 안쓰러워 보였다.


바람이 불때마다 나무줄기에서 서걱이는 나뭇잎들, 낙엽을 밟을 때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낭만적인 느낌을 주었다. 별바라기 숲에 다다라서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자작나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휜 나무가 없었는데 너무 키가 커서 거센 바람에 적응하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태풍이 불 때 강력한 폭풍우에 휜 것일까. 아예 목이 부러진 듯 상층부가 꺽인 나무도 있어 안타까웠다.

나는 그 나무들이 휘어진 모습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짊어진 삶의 무게에 등이 휜 것 아닐까. 별바라기 숲에 들어서니 긴 줄로 휜 나무들을 묶어 놓은 것이 보여서 더욱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숲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작년 겨울 습설이 많이 내리고 난 뒤 갑자기 강추위가 닥쳤다고 한다. 가지에 많이 쌓였던 습설이 고드름이 되어 주렁주렁 매달리다보니 그 무게 때문에 휜 것이었다. 고드름이 녹고 자연적으로 일어선 나무가 있는가하면, 목이 꺽인 나무, 등이 휜 나무가 생겼다. 그 중의 일부라도 일으켜 세우고자 줄을 연결해서 천천히 일어서게 만드느라 묶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의 삶도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갑자기 닥친 고난에도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좌절하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나무의 줄을 매달아 일으켜 주는 것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일어서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작나무 숲에서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아픈지, 혹은 슬픈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나누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