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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un 13. 2023

클래식 영화는 검열관의 가위질을 이겨냈다

도서 '클래식 중독' 리뷰 

20대 시절 심야 라디오 방송은 대부분 팝송을 들려주었고 극장에서도 외국 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란 말이 있지만 그 당시 젊음은 외국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자신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사이먼 앤 가펑클, 이글스, 퀸의 노래에 열광했고, 로버트 레드포드, 더스틴 호프먼, 다이안 레인 등이 출연한 영화를 즐겼다. 한국영화는 제목이나 감독의 이름 정도는 기억했지만 관람한 영화는 거의 없었다.

치기(稚氣) 어린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이 책 ‘클래식 중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인 조선희는 ‘한국 고전 영화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사용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영화 16편을 영화감독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대상자는 ‘이장호, 장선우, 하길종, 유현목, 이만희, 임권택, 신상옥, 김기영, 배창호’ 등과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감독들로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기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바보들의 행진' - 중 한 장면 


저자 조선희는 3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일했는데 이때 옛날 한국 영화를 실컷 보았다고 한다. 이 책을 출간한 이유도 전직이 기자였기에 늘 새것만을 탐했었는데 3년 동안 원장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깊고도 멀리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한국영화사의 강을 트레킹 하면서 발견한 진기한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첫 번째로 이장호 감독을 언급하는데 영화 ‘바람 불러 좋은 날’을 통해 한국 영화 뉴웨이브의 개화(開花)를 이룬 감독이다. 이 영화를 명보극장에서 본 장선우나 김동원, 강우석 같은 쟁쟁한 이들이 영화감독의 뜻을 굳혔다며 이장호가 새로운 시대의 막을 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본 영화는 ‘어우동' 한편만 기억이 되니, 그것도 야하다는 소문을 듣고 봤을 정도다. 


고작 9편의 영화를 찍고 퇴출되었다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는 한편도 본 기억이 없지만 ‘거짓말, 경마장 가는 길, 꽃잎’ 등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 당시 군사정부나 검열당국에 대해 저항했던 그의 작품 경향을 아방가르드 보다 다큐적 리얼리즘으로 보고 있는 저자는 그의 작품을 걸작으로 인정한다. 특히 ‘거짓말’을 일본 영화 ‘감각의 제국’을 감독한 오시마 나기사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동일시한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수위 높은 성애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운동권 출신으로 혁명적 이상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1980년 광주 민주와 운동이, 일본은 1960년에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반대한 안보투쟁이 거대한 시민운동으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미국의 베트남 침략과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68 혁명이 일어나 기성세대와 국가권력에 항의하는 시위로 확대되었다. 장선우, 오시마 나기사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의 사회와 일전을 불사하기 위해 노출 영화를 찍었다는 공통점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이런 영화 속에 심오한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관객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을 갖는다.

                                                    '바보들의 행진'  - 중 한 장면 


38살의 나이로 요절한 하길종 감독은 내 젊음에 가장 반짝이는 영화로 남아있는 ‘바보들의 행진’ 때문에 좋아하는 감독이다. 이 영화 속에는 그 유명한 송창식의 ‘왜 불러, 고래사냥, 날이 갈수록’ 등이 수록되어 있기에 지난 젊음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영화의 원작자인 최인호는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와 함께 청년문화를 이끈 상징적 인물이었다. ‘바보들의 행진’이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것을 안 하길종 감독은 단성사에서 편집본으로 시사회를 열었다가 최인호와 함께 잡혀가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곤욕을 치렀고 영화는 상영불가 판정을 받았기에 재심신청을 거듭한다. 이때 30분 분량이 잘려 나갔기에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가슴이 터지는 듯한 청량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특히 병태와 영철이 장발단속에 걸려 도망칠 때 흘러나오던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는 진정한 편집의 승리다.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은 왜 불러”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는 토라진 연인의 목소리에 마음 약해진 남자의 속마음을 표현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공권력으로 자유를 구속하는 군사정권을 향한 풍자였다.

고전영화 넘버 1으로 인정받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도 공보부의 영화 담당이 가위를 들고 ‘빈민촌의 초라한 판잣집이 나오면 나라 망신이라고 삭제하고, 멀리 경무대가 보인다고, 엑스트라의 치마가 짧다고, 제기랄, 이란 말도 자르던‘(132쪽) 자유당 시대를 지나 4.19 이후 서울의 봄 1년이 한국 영화에 베푼 은혜라고 한다. 특히 유현목 감독은 부모자식 관계나 형제간 우애나 부부의 정이나 연인관계가 모두 파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비참의 원인을 사회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는 것에서 감독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범죄도시 1.2.3을 관람한 관객이 현재 2,800만 명을 넘어선 것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고발적이고 리얼리티를 강조한 인디영화들은 개봉관 얻기도 어렵고 관객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꼭 사회고발적인 영화가 명작이라는 단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영화는 감추어진 현실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세희 원작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 당시 대학생들이 서클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소설이었다. “난쟁이 가족의 세 남매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하루 열다섯 시간씩 일하는데 그의 가족은 이제 부자가 되었나?” 이 질문 하나가 그 당시 열악한 노동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원세 감독에 의해 1981년에 영화화 됐는데 포스터를 보면 완전 애로영화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유는 역시 전두환 정부의 검열 때문이다. 시나리오 때부터 검열을 시작한 당국의 간섭은 “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킬 승화된 홈드라마” 로 만들라고 했지만 죽도 밥도 되지 못했다. 대한극장에서 개봉되었지만 관객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고 1만 3575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는 한국 영화 속에 감추어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사실적이고 간단명료하게 풀어나가기에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더구나 한국 영화가 그 당시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클래식 영화로 남아있는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서두에 한국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얻은 독재자들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영화에 수많은 탄압을 했지만 오히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K 무비가 전 세계의 영화제를 석권하는 놀라운 성과를 우리 눈으로 보고 있다. 불과 60년의 세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고통과 좌절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 시대의 아픔을 간증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희망보다는 추억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에 보지 못했던 영화를 통해 아픈 시대를 추억할 수 있고 저자의 표현대로 ‘이만희나 김기영, 유현목, 하길종을 만날 때, 또는 임권택이나 이장호, 장선우를 다시 볼 때 얼마나 짜릿했던가.’라고 말한다.

저자의 글만으로도 그 짜릿함이 전해져 오기에 행복한 책 읽기를 했다. 하나의 과제가 있다면 감독의 숨은 의도를 기똥차게 찾아내는 것. 영화를 보는 중요한 관점이다.

배경음악은 


내 지난 젊음을 생각나게 하는 


바보들의 행진 중에서 '고래사냥'입니다. (송창식)


https://youtu.be/aZFWlpJIu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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