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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un 09. 2023

난 눈물 많은 사람이 좋다

도서 '눈물은 왜 짠가' 리뷰

오래전 신문에서 '강화도령'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한 시인의 기사를 읽었는데 함민복 시인이다.


쌀이 떨어지면 어부가 되어 고기를 잡고, 먹을 것이 준비되면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쓰는 삶은 꽤나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그 후 시인이 쓴 시 몇 편을 읽으며 가난과 벗하고 있는 맑고 순수한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기도와 자연, 그리고 시라고 믿고 있다. 누구나 자장면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텐데,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동네 중국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5-6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한 구석에 내 연배쯤 되는 아저씨가 아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저분은 목사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건함이 배어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장면이 앞에 놓이자 기도를 시작하는데 그분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느껴질 정도로 그의 기도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천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자연을 떠났고 시를 읽지 않고 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인은 바다처럼 오염되지 않은 마음과 여린 감성,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시인의 글을 읽으면 너무 영악해진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움으로 투영된다.  


 2003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이 책은 시인의 새로운 글을 더해 근 10여 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는데 현실에서 깊이 절망하고 아파하는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눈물은 왜 짠가’라는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시인은 가난과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이다" 라며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하지만 가난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하며 삶을 한탄한다. 그러나 시인은 가난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통속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시인은 가난으로 인해 가족이 흩어지고 곤궁을 천형처럼 받아들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관에 걸려있는 행복한 가족사진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없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이 피면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난생처음으로 사진 한 장 찍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마음씨 좋은 까치에게 부탁해 보기도 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인은 이 책 속에서 켜켜이 노래하기에 자신도 간간히 창밖을 바라보며 이제 볼 수 없는 어머니를 추억한다. 삶의 마지막을 장남과 함께 보내기 위해 집에 와 계셨던 연약한 어머니는 어느 날 아들이 눕혀둔 청소기에 걸려 넘어지셨다. 고관절이 부러졌고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동생들과 상의 후 수술에 동의했고 결과는 좋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패혈증으로 인해 중환자실로 이송되셨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계셨던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으셨고 눈물 한 방울로 자신의 심정을 말씀하셨다. 아마도 "아들아 고맙다" 이런 뜻이겠지. 세월이 흘러 어머니 돌아가신 지 몇 년이 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심하지만 가끔은 사무치게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것이란 말은 맞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을 기억하기에 추억은 먹거리로부터 시작된다. 엄마의 요리라고 해봤자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만두였지만 그분이 해주신 것은 음식점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이유는 음식 속에 담겨있던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야 알고 그 맛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유품이 소중한지 예전에는 몰랐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 한 장, 그분이 평생 보셨던 성경책을 통해 그리움이 전해진다.


시인도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던 시인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설렁탕을 시키신 어머니는 주인아저씨에게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러니 국물을 조금 더 달라"라고 하신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는 틈을 타 시인의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 주신다. 아들은 국물을 그만 따르라고 자신의 뚝배기로 어머니 뚝배기를 툭 부딪친다.


음식을 통한 어머니의 사랑을  겪은 세대이기에 이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인도 뚝배기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렸던지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댄다. 마치 영화 속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친숙한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주인아저씨는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도록 조심스럽게 다가와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간다. 이때 시인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눈물은 왜 짠가”


소금의 기능은 간을 맞추고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기에 예전에는 화폐의 기능을 할 정도로 귀중했다. 어머니의 사랑은 소금처럼 귀한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자식은 눈물의 짠맛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한다. 눈물은 순수하고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눈물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눈물은 왜 짠가’ 이 책이 주는 감동도 여기에 있다. 시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배운 것 없고 가난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맑고 아름답다. 매제의 공장이 어려웠을 때 시인은 공고를 나왔다는 이유로 한 달 동안 공장에서 일을 해준다. 짧은 한 달이었지만 시인은 첫 월급을 탄 돈으로 속옷 두벌을 사 함께 일했던 공장장과 이기사에게 선물을 한다. 놀랍게도 두 사람도 시인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이 기사하고 만년필 하고 연필을 샀어. 좋은 시 많이 써”


시인은 감동한다.


“좋은 시는 당신들이 내 가슴에 이미 다 써놓았잖아요. 시인이야 종이에 시를 써 시집을 역지만 당신들은 시인의 가슴에 시를 쓰니 진정 시인은 당신들이 아닌가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눈물이 왜 짠지 이유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들은 시인의 말처럼 상대방의 가슴에 시를 쓰는 사람들이다. 내 가슴에 시를 써주는 몇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윤동주의 시처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쓸쓸함'을 알게 해주는 소중한 벗이기에 또한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고 다짐도 해본다. 때론 삶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더럽게 다가 오기에 아프고 힘든 현실을 살고 있지만 ‘시, 기도, 자연, 그리고 영혼이 맑은 사람들’은 삭막한 현실을 이겨내는 방어기제다. 영혼이 오염되고, 그리움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은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처럼 청량감으로 다가온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교과서의 역할도 한다. 그리고 눈물이 왜 소중한지 깨닫게 한다.


배경음악은


Jimmy Osmond의 'Mother of Mine'입니다.


https://youtu.be/kKdf6Zm3n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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