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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un 21. 2023

책도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파워 클래식' 리뷰

평생에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 사랑을 운명적이라 말한다면 비록 비극으로 끝났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랑에 감동한다. 대부분의 사랑은 신분이나 재산, 외모, 지적인 수준 등의 조건으로부터 시작이 되지만 운명적인 사랑은 그것을 넘어서기에 아름다움이 있다. 11살 연상의 가난한 시인에게 5번 청혼한 끝에 결혼한  고민정 국회의원의 사랑 이야기에 감동했던 이유도 오직 사랑만이 결혼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이룰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가치로 다가온다. 이 운명적인 만남을 책과의 관계에 적용한다 할지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 만남은 현실세계에서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랑은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가 극히 적지만 책과의 만남은 무제한으로 가능하고 실제적으로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 가장 보편화된 교훈이 되고 있다.  



‘파워 클래식’ 부제로 ‘우리 시대 지식인 101명이 뽑은 인생을 바꾼 고전’은 책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2012년 3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101 파워 클래식’을 책으로 엮었는데 편저자인 어수웅은 101명에게 처음부터 자신의 삶을 바꾼 책,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새긴 책을 물었고 파워 클래식은 그 답’이라고 말한다. 가벼움과 재미를 주 무기로 가지고 있는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의 글은 읽고 나면 숨겨진 귀한 깨달음이 있기에 그의 글을 좋아한다. 이 책 속에서 그는 37명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의 글이 이 책을 대표한다고 말한다면 자신의 편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감동은 명확하다. 도대체 내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도대체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느닷없이 다가온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난 얼마 전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날부터 계속 후회하고 있다.' 인생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이 정도의 고뇌가 있어야 진정한 책 읽기가 아닐까?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글자만 읽으며 책 읽기 경력에 또 한 권의 책을 추가하는 자신이 부끄러운 것은 인생의 고뇌와 갈등에 빠지는 책 읽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흔들릴 정도의 독서가 되지 않는다면 책과의 진정한 만남은 아니다. 물론 그런 감동을 모든 책에서 얻을 수는 없지만 진정한 책 읽기라면 그 정도의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저자들이 그 자리까지 오르게 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정독으로 책 읽기의 교본이 된 박웅현은 이런 고백을 한다. ‘알랭드 보통의 글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릴 때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나는 인생 전체를 관조하는 한 대가의 꼼꼼한 시선을 느꼈다. 밀란 쿤데라의 머릿속 풍경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철학적 사고와 역사적 문맥, 시대적 통찰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절묘하게 녹여낼 수 있는지’



책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자기 점검은 읽는 방법에 대한 고전적인 지침이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에 이 책 속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유는 저자들도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그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의 독서력을 키워 나갔다. 박웅현도 자신의 독서에 대한 수많은 고민이 있었고 그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들이 독자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비록 짧은 글이기에 한 저자의 책 읽기에 대하여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책을 쉽게 읽지 않았고 한 권의 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책 읽기도 능력이기에 독서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또 하나의 가치는 그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요즘 시대의 트렌드가 인문학의 발견이고 핵심은 고전에 있다. “사람들이 왜 고전을 다시 읽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편저자인 어수웅은 ‘시대가 불확실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근원을 찾는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고전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는 이유는 결국 고전이 세월의 비평을 이겨 낸 인생의 지혜를 전하고 미래에 대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 아닐까? '라고 말한다. 고전의 가치는 인생의 근원이 되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기에 수많은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해 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은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를 던져준다.

이응준 시인은 카프카의 ‘변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 인간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기계 조직으로부터 이탈하는 그 순간 그는 곧장 해충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이 상상력은 1915년 당시로는 대단히 선지자적이고 파괴적인 은유였다’ 그의 해석대로라면 우리 시대의 불행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삶보다는 해충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해충이라는 자각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김정운 교수처럼 때려치우면 제일 좋겠지만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지겨운 밥벌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레고리 잠자처럼 자기 방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인생을 끝장 낼 수도 있고 뫼르소처럼 속물적인 세상에서 내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살다가 사형대에서 최후를 맞으며 끝낼 것인가?

이런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은 그렇잖아도 힘든 세상에서 자신의 머리를 뚜껑 열리게 하겠지만 그것이 반복될 때 인생의 나침반은 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10대 시절 요약본으로 읽은 책들이 많기에 저자들이 읽고 감동받은 고전을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하나 더 이 책의 가치는 편저자인 어수웅의 힘이다.
그는 저자들이 소개한 작품의 저자와 줄거리, 작품세계의 핵심을 정확히 꼭 짚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의 지적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기에 많이 부럽다. ‘마담 보바리는 줄거리로 이해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직접 읽어 봐야 그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를 그는 플로베르의 문장에서 찾는다. 통속적 내용의 소설이지만 이 책이 고전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한다. 플로베르가 최초로 작가의 생각과 표현 방식을 일치시켰는데 그는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데 가장 정확한 단어를 찾아내어 거기에 리듬까지 더했다고 한다. 창작의 고통을 잘 알지 못하지만 보바리 때문에 자신은 괴롭다 못해 죽을 지경이라는 그의 고백은 이해가 된다. 이렇게 어수웅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내용을 친절히 설명하며 고전의 가치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삶을 바꾼 책에 대해서 말해주겠습니까?” 라며 저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자신에게 해봤다. 몇 권의 책들을 떠올렸지만 “이 책입니다!”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을 너무 쉽게 읽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읽기는 했지만 자신의 것으로 남아있지 않기에 언제나 책 읽기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리뷰를 쓸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짧지만 저자들의 글쓰기의 특징과 내용 이해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처럼 책을 읽어야 지란 다짐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 괜찮다.

누구에게나 운명적이란 말을 붙이고 싶은 만남이 있을 것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그 단어는 절실하게 다가오고 공감대가 클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숨을 거둘 때쯤이면 그 한 권의 책을 내 아이들에게 소개하며 눈을 감는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책을 읽는 것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요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똑같은 재료를 사용했지만 요리사의 솜씨에 따라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책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이제 자신 앞에 101개의 고전이라는 풍성한 재료가 놓여 있기에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라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운명적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책으로 요리될 때 자신도 이 저자들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자신의 책 읽기는 계속된다. 쭈욱 ~~  


배경음악은

임동혁 - Beethoven : Piano Sonata No.14 'Moonlight'입니다.


https://youtu.be/CEb8brQHc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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