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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un 27. 2023

아직도 유효한 꿈

'낯선 도시에 취하다' 리뷰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책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현실과 삶의 비범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사는지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루하고 힘겹고 재미없는 일상으로 탈출하기 위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행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그럴듯한 여행기를 읽으며 TV에서 소개하는 여행지를 볼 때마다 “내 기필코 떠난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모습이란 생각을 하면 조금 쓸쓸해진다. 몇 년 전 동생이 “이탈리아 여행 간다. 6박 7일 정도로 로마, 바티칸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등을 보고 올 거야!” 며 은근히 자랑할 때 부러움과 질시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떠나기 위하여 적금을 붓기도 하고 과감하게 전세자금 빼기도 하고 심지어 직장도 때려치우며 죽자 사자 떠난다. 그러나 이런 용기도 없는 소시민은 그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직장 때려치우고 떠나?” 라며 자신을 충동질하지만 이미 일상적인 삶에 길들여져 있기에 수없이 결심만 할 뿐이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떠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할 뿐이다.  


그러기에 이런 여행기를 읽는 것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왜냐하면 떠난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보다 나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에 떠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한윤희도 서른 즈음 자신의 의사가 아닌 누군가에 이끌려 억지로 여행을 떠났고 이때부터 여행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세계 80 여 개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거닐었다면 부러움의 대상인데 이 책은 그녀가 경험한 스위스와 이탈리아 여행기다. 이 두 나라는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지고 자신도 그중의 한 사람이기에 선 듯 구입했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표지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한참이나 들여다봤는데 책 제목처럼 낯선 도시에 취하는 것 같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취리히나 융프라우,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 같은 도시들은 이미 영화나 여행 프로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저자의 글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별 감동이 없을 수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 출판사마다 여행기를 출간하고  가장 쉽게 만날 수 있기에 책 선택도 잘해야 한다. 



‘낯선 도시에 취하다’는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저자가 여행한 도시들을 정보 중심 나열한다면 별 감동이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여행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먼 여행지에서 떠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 독자들은 저자의 사랑에 안타까움을 표할 수도 있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풀어놓으면 그 스토리에 빠져 들기도 한다. 개인적인 취향일지 모르지만 아직 마음에 남아있는 여행기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김남희 여행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런던에서 가만히 이름만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볼이 불거지던 사랑이 있었나 보다.


‘실패한 사랑보다 가슴 아픈 건 말하지 못한 사랑이 아닐까?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이 저 홀로 잎 내고 꽃 피고 열매 맺고 져버린 작은 꽃 같은’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짧은 문장으로 말하지만 외로움을 느낄 때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감추어진 사랑이 드러날 까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한편으로는 좀 더 과감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도 한 그 사랑의 떨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아! 나도 그런 사랑이 있었는데.....” 라며 안타까워할 것이다. 그래, 여행지에서 혼자 밥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 낯선 거리를 지날 때 들려오는 음악이 그 사람과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기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눈시울을 글썽이는 아픈 사랑이 들어있어야 멋진 여행기란 생각을 한다. 독자의 감성을 움직이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정보만 나열된 책이라면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감성이 움직이는 이유는 역시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 ‘로마의 휴일, 피렌체와 밀라노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되는 영화 ’ 냉정과 열정사이‘ 등 을 통해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여행지와 만난다. 영화 ’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준세이는 10년 전에 아오이와 한 약속  "너의 서른 번째 생일날,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인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 는 약속을 기억하고 희망과 설렘을 가지고 464개의 계단을 힘차게 오른다. 그러나 저자는 이 계단을 오르며 이렇게 한탄한다.


’ 점점 숨은 차오르고 회오리처럼 꼬여 있는 계단은 빙글빙글 어지럽게 한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세고 있던 개수는 몇 개에서 멈췄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영화 속 낭만은 어디에도 없다. 왜 난 이 영화에 집착했을까? 너무 힘들어 자책만 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올라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으며 많이 웃었다. 이 계단은 연인과 함께 올라가야 하는 모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 힘듦이 있는 것이 영화와 현실의 차이다. 저자의 말대로 누가 올라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ㅎㅎ. 아마 저자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면 두 손 꼭 잡고 이 계단을 오르지 않을까? 

비록 사랑이야기는 빠져 있어도 이 책 속에는 먹거리와 쇼핑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나온다. 딸아이가 보내온 스위스와 이탈리아 여행사진속에도 먹고 마시는 것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없는 돈 때문에 레스토랑과 같은 비싼 곳은 얼씬거리지도 못하지만 저자가 좋아하는 젤라토나 거의 굶다시피 하다가 한 레스토랑에서 T 본 스테이크를 먹는 호사스러움도 여행의 재미일 것이다.


먼 나라로 떠나는 여행을 꿈꾸지는 않지만 충동적으로 한 번쯤 떠나고 싶은 생각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사는 것이 재미없고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훌쩍 떠나는 나 혼자만의 여행을 기대하는 것은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영화 ‘비포선라이즈’와 같은 낭만을 꿈꾸지는 못하지만 여행은 낯선 도시, 낯선 사람, 낯선 문화,를 만나는 즐거움이다. 익숙한 것과 잠시 이별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는 설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뭔가 내 인생에 획기적인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여행은 품질 좋은 건강식품처럼 언제나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특히 유럽의 골목길은 왜 그리 내 마음을 끄는지 모르겠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 것을 망가트리지 않았고 자동차 하나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을 보존하며 느리게 사는 법에 익숙하다. 베란다마다 예쁜 꽃으로 장식된 미로와 같은 길을 걸으며 감탄사를 터트리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안녕"하며 미소를 날리는 즐거움 멋지지 않을까? 


번거롭고 바쁘고 분주한 서울을 잠시 벗어나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를 만나고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꿈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내 삶의 버킷리스트다. ^^


배경음악은 


Anita Kerr Singers의 'Welcome To My World'입니다 


https://youtu.be/kzjiVWk8k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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